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화성행궁 신풍루 앞마당에는 10여명 정도 남녀가 모여든다. 가벼운 복장에 손에는 목검 한 자루씩 들려있다. 운동이 시작되면 두 손을 앞으로 공손하게 모으는 공수(拱手)자세를 취하고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
그리고 몸을 푼 다움 권법(拳法)의 기초 자세를 연습한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벌써 이때쯤 숨이 가빠오고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이어서 “출검(出劒)!” “지검(持劒)!” “양각(兩脚)!” 자세를 취하면서 본격적인 검술 수련이 시작된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정리운동을 하고 바쁜 걸음으로 헤어진다. 각자 일터로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무예24기(武藝二十四技)’를 수련하는 수원시민들이다. 직장인, 주부, 역사학자, 공무원, 화가, 문학인, 조경전문가, 도시계획학 박사, 건축사 등 직업도 다양하다.
수련은 지난 4월부터 시작됐다. 나와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 서주호 (사)화성연구회 부이사장, 황인욱 화성연구회 회원 등이 한잔 하다가 말이 나왔다. 무예24기를 시민들에게 확산시키고 수원의 무예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수련을 시작하자고 뜻을 모았다.
처음엔 5~6명 정도가 나왔지만 지금은 10여명이 참여한다. 행궁동 주민센터 프로그램으로 등록돼 작은 지원이나마 받게 됐다. 앞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가 무예24기를 시작한 것은 제법 오래됐다. 12~13년 정도 수련했다. 물론 겨울에는 수련할 곳이 없어서 쉬고, 술을 많이 먹은 다음날은 그 핑계로 쉬기도 했다. ‘본국검’ ‘제독검’ ‘조선세법(예도)’ ‘왜검’도 설렁설렁이나마 익혔다.
행궁광장이나 창룡문 앞에서 벌어지는 시범단 공연에도 몇 번 얼굴을 내밀어 진검을 들고 짚단이나 대나무를 베기도 했다.
수련 모임은 수원시 곳곳으로 확대됐다. 연무대, 효원공원, 시청 앞 88공원, 화성행궁, 만석공원 등지에서 아침에 혹은 저녁에 수련모임을 가졌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10년 넘게 수련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나이까지 들어 아무래도 예전 같지 못한 몸으로 다시 목검을 잡고 보니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안 쓰던 근육들이 비명을 질렀고 발은 꼬였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나니 몸이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이젠 아침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뿌듯하다.

무예24기는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무예다. 지상무예 18가지와 마상무예 6가지를 합친 실전 군사무예다. 무예도보통지는 1790년(정조 14) 정조의 지시에 따라 목판인쇄본으로 편찬된 훈련용 병서(兵書)다. 군사와 무인들이 실제로 무예를 습득할 수 있도록 각종 권법과 검술, 창술, 곤봉술, 말타기 등 전통무술 동작이 그림을 곁들인 해설과 함께 수록돼 있다. 여기에 수록된 지상무예 18가지와 마상무예 6가지 등 모두 24기엔 신라 때부터 비롯됐다는 ‘본국검’ 등 우리 전통무예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무예, 심지어 일본의 검술인 ‘왜검’까지 포함되고 있다.

지난 2017년 10월 30일엔 북한이 무예도보통지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정조대왕은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한 후 군사들에게 여기에 수록된 무예를 익히게 했다. 과거시험의 과목으로도 활용했다. 나는 모 지면에 이렇게 썼다.
‘특히 임금을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부대인 장용영 군사들은 이 무예를 가장 치열하게 익혔을 것임에 틀림없다. 장용영은 내영(內營)과 외영(外營)으로 구성됐다. 이 장용외영이 바로 수원에 존재했다. 수원을 기반으로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만큼 외영이 위주였다. 장용외영과 관련된 건물이 화성행궁에 있는 남군영과 북군영인데 함께 장용외영의 기마병이 왕의 측근에서 각각 100명씩 입직(入直)·숙위(宿衛)했다.’

이들이 익혔던 무예가 무예24기다. 수원에서는 정조가 직접 참관한 무과시험이 치러졌는데 그때 시험 과목도 무예24기였다.
무예24기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그러나 임동규 선생이 옥중에서 무예도보통지를 보며 복원해냈다. 그분의 제자들이 전국으로 퍼졌고 운명처럼 수원에서 자리 잡았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있는 수원에는 또 하나의 보물이 있다. 무예24기다. 화성이 하드웨어라면 화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익혔던 무예24기는 소프트웨어로써 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매력적인 관광자원이다. 나는 “무예24기는 화성에 담긴 역동적 생명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수원시가 무예24기의 가치를 더 높게 봐주길 바란다.

수원시내 곳곳에 무예24기를 수련하는 곳이 생겼으면 좋겠다. 특히 제대로 된 전수관이 생겨서 수련생들을 이끌 시민사범들을 양성하고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체험프로그램을 제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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