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오래 전 겨울, 그리고 2019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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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오래 전 겨울, 그리고 2019년 여름
  • 최규일
  • 승인 2019.08.0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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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일 편집국장

1985년 2월 카투사로 복무할 때였다. 2.12 총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재자투표를 해야했다. 부재자 신고를 위한 외출도 허락된 터였다. 그런데 외출 당일 미군 상급자가 근무를 지시했다. 우린 반발했지만 그는 "너희 나라 선거엔 관심없다. 여기선 미군룰을 따라야한다"며 막무가내였다. 나를 포함해 몇몇 병사가 외출을 강행했다.

미군 사령관의 호출을 받았다. 그는 '탈영'을 들먹이며 "너희는 한국군으로 보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갓 일병을 단 내 군생활은 더 힘들어질 게 뻔했다.

그런데 이튿날 징계위원회에서 반전이 있었다. 한국군 장교가 이렇게 말했다. "징계는 없다. 다만 미군 눈치도 봐야하니 너희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겠다." 그는 "미군이 우리 선거에 간섭한 것 아니냐"며 "참석한 한국군 모두 징계에 반대했다"고 귀띔했다. 이후 서해의 인적 드문 바닷가에서 군생활이 이어졌다.

예상밖의 정과 배려를 체감할 때의 진한 여운. 오래전 개인사를 꺼내든 이유다. 당시 군대는 경직된 조직이었다. 부재자 투표만해도 100%를 지향했다. 여당쪽 몰표를 전제한 것이었다. 부대 상급자는 정신교육을 빌미로 "너희가 누굴 찍었는지 바로 알 수있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그들도 군인이기 전에 가슴 뜨거운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동료가 곤란에 빠졌을 때, 상대가 민족주의적 정서를 건드렸을 때 나몰라라 하지않고 기꺼이 우리편을 들어줬다.

 

"아베 수상님께 사죄 드립니다.", "한국은 2차대전 전범국이다."

2019년 여름, 일본도 아닌 국내에서, 그것도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한국인의 목소리를 빌려 망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같은 발언은 대한해협을 건너 한국의 여론인양 확대재생산되며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다. 소수의 돌출행동이지만 마냥 두고볼 수만은 없는 연유다.

먼저 도발한 쪽에 사죄를 구하고, 피해 당사자를 전범국으로 둔갑시키는 저의는 뭘까. 아무리 누군가가 미워도 할 말, 안할 말의 경계는 뚜렷하다. 한일간 '경제 전쟁'이 터졌다. 그런데 '내부 총질'이니 상대가 반색할 일이다. 국민정서와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상식까지 저버린 모습은, 오래 전 나의 군생활을 따뜻하게 채워준 당시 상급자들의 그것과 대비돼 씁쓸하다.

한국인 답지 않은 한국인, 그리고 이웃나라 길들이기에 다시 맛들인 일본에게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은 지난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윤리와 도덕의식을 갖지못한 민족은 멸망한다."

최규일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