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살인의 추억'과 '화성 연쇄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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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살인의 추억'과 '화성 연쇄살인사건'
  • 최규일 편집국장
  • 승인 2019.09.1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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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일 편집국장.
최규일 편집국장.

2002 월드컵의 열기가 식어갈 무렵, 축구에서 영화 담당기자로 잠시 '외도'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영화엔 관심이 별로 없었다. 시사회는 따분했고, 영화 관계자들과의 만남은 부담스러웠다.

2003년 4월 25일 '살인의 추억'이 개봉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를 보기 전 기대치 역시 높지 않았다. 오히려 대놓고 보기 불편한 내용, 끝내 미궁에 빠지는 결말 탓에 스트레스 지수만 올라갈 것 같았다.

우려와 달리 영화는 '웰메이드'란 표현이 제격이었다. 스토리, 감독의 연출, 배우의 연기 모두 몰입도 100%를 가능케 했다. 시사회를 마치고 명동 중앙극장을 나섰을 땐 추적추적 저녁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날의 스산한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시사회 며칠 후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장편 데뷔작('플란다스의 개')의 흥행 성적이 신통치 않았음에도 그는 당당하고 열정적이었다. 그리고 굳이 충격스러운 실제 사건, 그것도 이미 연극('날보러 와요')으로 소개된 작품을 내놓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소한 범인이 누군지는 알고 싶었다. 요즘 범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제목을 '살인의 추억'으로 한 것에 대해선 "살인이 결코 추억이 되어선 안된다는 역설적인 의미"라 했고 "사건의 기억 자체가 응징의 의미"라는 멋진 말을 남기기도 했다.

봉 감독을 포함한 온 국민이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바로 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정체를 드러냈다. 또다른 살인 혐의로 복역 중이라고 한다. 늦었지만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벌인 장본인이 밝혀진 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범죄자들은 항상 완전 범죄를 꿈꾼다'고 한다. 반면 이들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은 '모든 범인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는 믿음으로 시간과 싸운다. 완전 범죄를 깨는 최고의 무기는 과학 수사일 것이다. 해부학, 생물학, 화학은 물론 범죄 사회학, 논리학까지 사회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는 게 요즘의 수사기법이다. 화성 연쇄살인 용의자 특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경기남부경찰청 역시 더욱 정교해진 DNA 분석을 활용했다고 한다.

진실을 밝히는 또하나의 힘은 지속적인 주변의 관심이다. 화성 사건은 공소시효(2006년 4월 2일)를 넘겨 자칫 수사에 동력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은 여전했고 이에 부응한 경찰은 집요하게 파고들어 영구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의 실타래를 풀어냈다. 
 
개봉 당시 '살인의 추억' 포스터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고 있었다. 그 물음은 어딘가에 숨어있을 누군가를 찾고 있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묻고 있다는 걸 새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