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잃은 태권브이가 한량처럼 놀고 있다. 태권브이가 백수가 됐다는 이야기는 지구에 평화가 찾아 왔다는 의미다. 아이러니하다. 이 아이러니는 또 현실이다. 자녀들의 눈에는 ‘영웅’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엄마아빠. 특히 아빠의 실직은 가계경제를 휘청거릴 정도로 타격이 크다.

성태진 작가가 자산의 작품 '종묘'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사진=수원일보)
성태진 작가가 자산의 작품 '종묘'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사진=수원일보)

그런데 이 태권브이가 오늘날 작가 한 명을 만났다. 작가의 상상력에서 태권브이는 좀 다른 형태의 영웅이 된다. 실수를 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며 욕설도 마다 않지만 태권브이 본연의 모습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태권브이에게 또 다른 생명력을 불어 넣은 작가는 현재 반도문화재단 ‘아이비 라운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성태진이다.

지난 26일, 반도건설이 설립한 반도문화재단 ‘아이비 라운지’ 개관전으로 초대 받은 성태진 작가는 ‘With You’(당신과 함께)란 개인전 타이틀로 지역 주민들과 만나고 있다. 오는 12월 31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동탄2신도시에 아파트를 지은 반도건설이 도서관과 함께 ‘동네 미술관’이란 컨셉으로 문을 연 ‘아이비 라운지’의 첫 번째 초대전이다. 

전시는 성 작가의 크고 작은 20여 편의 작품으로 꾸몄다. 40대 중반의 성 작가는 사실 미술계에서 독특한 기법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주목 받아왔다. 추계예술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한 그 답게 주요 작품들은 목판화로 이뤄졌다. 일일이 작업한 목판에 페인팅을 입혀 질감은 물론 색감과 입체감이 뛰어나다. 더불어 일반적인 회화 그리고 판화와 달리 독창적인 느낌이다.

성태진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반도문화재단의 '아이비 라운지' 전시장 내부 모습.(사진=수원일보)
성태진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반도문화재단의 '아이비 라운지' 전시장 내부 모습.(사진=수원일보)

우리나라의 국보를 모티브로 한 작품 중 하나인 ‘종묘’에는 수퍼맨과 스파이더맨, 원더우면, 배트맨, 블랙위도우 등 오늘날 히어로가 종묘를 배경으로 앞 열에 서 있다. 그 뒤로 마징가제트와 태권브이는 빼꼼하게 얼굴만 내밀고 있다. 그리고 옆에는 진돗개와 똥개가 이들을 바라보고 있고 목판화 곳곳에는 노래 가사 적혀 있다.
이에 대해 성 작가는 "일본에 왜곡된 장소(국보)를 찾아 표현하고 싶었다. 같은 영웅이지만 태권브이가 뒤에 있는 것은 오늘날 외국 영웅에 밀려 있는 현실이며, 옆에 개 두 마리는 되레 당당한 민초를 대변한다"며 "그러나 모든 작품이 작가의 의도대로 와 닿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보는 이들의 시각에 따라 재해석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이비 라운지에서는 이와 같은 작품들을 대면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목판화 외에도 페인팅으로만 완성한 작품도 만날 수 있으며, 아이들이 태권브이와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작업 전 스토리를 기록한다는 성 작가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IMF 등 경제위기에 놓인 한국을 바라보며 그 옛날 태권브이가 생각났다"며 "태권브이에 내 모습을 투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총 9부작의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는데, 지금처럼 모두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도건설이 동탄2신도시 내 건립한 'library & gallery'인 '아이비 라운지' 입구.(사진=수원일보)
반도건설이 동탄2신도시 내 건립한 'library & gallery'인 '아이비 라운지' 입구.(사진=수원일보)

반도문화재단 기획자 이생강은 "유명한 미술관을 좇지 않아도 내 보금자리에, 안식처에 훌륭한 미술관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기획하게 됐다"며 "동네 주민 누구나 편하게 찾아 작품을 감상하고 힐링이 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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