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노숙인들,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다
상태바
수원시 노숙인들,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다
  • 서동영 기자
  • 승인 2019.11.30 0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원역서 노숙인 인식개선 ‘꽃피는 몸 프로젝트’ 열려
인문학 수업 받는 노숙인의 작품 및 공연 선보여
홍보는 아쉽지만 참여자의 자활 의지 확인은 소득
노숙인과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 관계자들이 29일 수원역 앞에서 난타공연을 하고 있다.(사진=수원일보)
노숙인과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 관계자들이 29일 수원역 앞에서 난타공연을 하고 있다.(사진=수원일보)

[수원일보=서동영 기자] “저는 000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거리에서 생활하지만 저는 모터사이클 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어두워진 29일 오후 5시 수원역 앞.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명 한명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이름과 꿈을 얘기했다. 긴장돼 떨린 목소리에도 주변에서 박수가 쏟아지자 이들의 얼굴에선 웃음꽃이 피어났다. 매번 싸늘한 시선만 받았던 처지다. 남들 앞에서 당당히 서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른다. 이들은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즉 노숙인이었다.

‘꽃피는 몸 프로젝트’란 이름의 이 행사는 수원시와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 수원푸른교실 미술치료연구소, 한신대가 지난 7월부터 준비한 노숙인 인식개선 프로그램으로, 이번이 첫 행사다. 이들 단체가 진행 중인 인문학 수업을 받는 노숙인 20여 명이 현대무용과 난타 등 공연과 시와 그림 등 미술작품을 선보였다. 미술작품은 인문학 수업의 결과물이다.

노숙인들이 현대무용을 하고 있다.(사진=수원일보)
노숙인들이 현대무용을 하고 있다.(사진=수원일보)

첫 번째 무대는 현대무용이었다. 노숙인 6명이 자신의 이름을 붓으로 쓰고 말한 뒤 교사, 아나운서, 가수 등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꿈을 몸으로 표현했다. 이어 난타공연이 진행됐다. 노숙인과 센터 관계자가 함께 북을 두드렸다. 한 달 밖에 연습을 하지 않았다는데 합이 제법 잘 맞았다. 행인들도 즐거운 공연에 많은 박수를 보냈다. 수원역 대합실로 가는 계단 등 행사장 주변엔 노숙인이 쓴 시와 그림이 전시돼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행인들이 노숙인을 응원하는 문구도 적을 수 있게 했다.

센터 관계자는 “노숙인이 용기를 내 사람들 앞에서 이름을 말한 건 자신이 재기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경기도내에서 노숙인 인식개선 프로그램을 하는 것은 수원시가 처음”이라며 “내년에도 행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문학 수업을 받은 노숙인들이 직접 지은 시.(사진=수원일보)
인문학 수업을 받은 노숙인들이 직접 지은 시.(사진=수원일보)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플래카드 등 행사의 취지를 단박에 알아 볼 수 있는 안내물이 없어 겉보기엔 여느 흔한 문화행사처럼 보였다. 노숙인에 대한 인식개선이란 취지에 미흡했다. 날씨가 추워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또 수원시는 행사 당일 아침에야 홍보에 나섰다. 시 관계자는 “언론담당부서와 협의하다 보니 보도자료 배포가 늦었다. 다음엔 플래카드 등 다양한 안내물을 준비하고 좀 더 따뜻한 때를 골라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첫술에 배가 부를 순 없다. 적어도 행사에 참여한 노숙인들이 자활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는 점은 큰 소득이다.

거리에서 생활한 지 9년 정도 됐다는 A(45)씨는 “처음엔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사람들 앞에 선다니 긴장되더라. 생각보다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이번을 계기로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행사장에서 100m 정도 떨어진 노숙인 임시보호소 ‘꿈터’ 앞엔 많은 수의 노숙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들을 얼마나 더 많이 끌어올 수 있느냐가 ‘꽃 피는 몸 프로젝트’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