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칼럼] 25일은 ‘독도의 날’, 사운 이종학 선생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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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칼럼] 25일은 ‘독도의 날’, 사운 이종학 선생을 기억하라
  • 김우영 논설위원
  • 승인 2020.10.1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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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논설위원 / 시인

 

오는 25일은 ‘독도의 날’이다. 사운(史芸) 이종학(李鍾學, 1927~2002) 선생은 독도와 이순신장군, 일본침략사, 항일 운동사 자료수집에 평생을 바쳤다.

수원광교박물관에는 ‘사운 이종학사료관인 '사운실(史芸室)'이 있어 역사자료들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사운실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라고 표기된 '삼국접양지도' 등 독도 관련 자료와 함께 이순신장군의 '이충무공전서'와 수원화성, 간도, 금강산 등 귀중한 자료가 눈에 띤다. 선생이 국내외에서 수집한 독도 관련 사료 중 일부는 1997년 우리나라 최초 영토박물관인 독도박물관(울릉군)에 기증했다. 선생 사후에 유가족들은 고서, 고문서, 관습조사보고서, 사진엽서, 서화 등 2만여 점의 방대한 사료를 수원시에 기증했다.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라는 문서를 근거로 독도소유권을 주장한다. 그런데 1905년은 한국이 외교권을 상실한 상태였고 영토 주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이때 일본 시마네현이 고시를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대한제국 정부가 1900년 10월 칙령으로 지방행정제도를 개편, 강원도 울진군에 속한 울릉도와 독도를 '울도군'으로 독립시켜 '관보'에 게재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시마네현 고시를 근거로 2005년엔 이른바 '다케시마 일본영토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케시마의 날'이란 것을 제정하고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일본은 자신들의 사료에서 독도를 한국땅으로 표기했다. 독도는 서기 512년에 신라의 영토가 된 이후 지금까지 우리 땅이었다. 1869년 일본 당국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부속'임을 확인한 문건이 '일본외교문서' 제3권에 수록돼 있다. 1951년 연합국과 일본이 체결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설명서에 실린 일본 영역지도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한국영토 안에 포함돼 있다. 일본 스스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근거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평생을 바친 이가 사운 선생이다. 독도박물관 초대 관장도 지낸 선생은 독도가 대한민국 고유 영토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를 수집해 독도박물관과 수원시에 기증했다.

선생은 독도 관련 사료(史料)를 찾기 위해 막대한 자비를 들여 일본 도서관과 고문헌 수집상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울릉도에 건립된 독도박물관 초대 관장이기도 한 그는 평생 수집한 독도 관련 지도와 고문서, 서적, 사진 등 독도가 명백한 한국 땅임을 증명해주는 역사자료 512점을 독도박물관에 기증했다. 독도박물관에는 독도가 우리 땅이란 여러 가지 명확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선생은 독도 뿐 아니라 대마도 역시 우리 땅이었다고 밝혔다. 선생 생전에 일본 공립 공문서관에서 찾아낸 지도에 근거한 것이다. 이 지도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신하들에게 명령해 만든 것으로 독도와 대마도가 우리 영토로 포함돼 명기되어 있다.

선생은 “독도 수호의 사명은 남북이 따로 없으므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소신을 신문기자였던 나에게 강조하곤 했다. 실제로 선생은 2001년 3월 북한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남북 최초의 역사자료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전시 자료들은 독도박물관 특별기획전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도 공개됐다. 그때 선생은 내게 말했다. “내가 북한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이 증거를 토대로 해서 북이라도 우리가 못 받았던 사과와 배상도 제대로 받으라고요”

선생은 가끔씩 나를 비롯한 문화부 기자들을 단골음식점인 고등반점으로 불러 점심을 사주면서 “여러 사람에게 널리 알려 달라”며 좋은 기사 자료를 건네주곤 했다.

그처럼 밥 사는 것을 좋아하고 자료 기증하는 데 호탕했지만 그의 구두 뒤축은 늘 닳아 있었다. 양복도 새것은 아니었다. 지난 2014년 1월 14일 고인의 딸 이선영씨가 동북아역사재단이 주는 제5회 ‘독도상’을 대신 수상했다. 선영씨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구두는 10년씩 신으셨어요. 뒤축을 몇 번씩이나 바꾸셨죠. 그렇게 아끼면서 자료수집 비용을 대신 거예요”

과거사를 감추고 왜곡 교육하는가 하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과의 사이가 썩 좋을 리는 없다. 일본정부는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고 치졸한 경제 보복을 하고, 우리 국민들은 자발적인 일본제품 불매운동, 일본 여행 거부운동으로 맞서고 있다.

일본은 적대적 망언과 행동을 즉각 중단하고 이제라도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우호협력을 위해 노력하길 바란다.

이른바 ‘토착왜구’들까지 활개 치는 지금, 사운 선생이 더욱 그립다. 독도를 지키기 위해 평생 독도자료를 수집하고 기증한 이종학 선생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