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많은 문화예술행사가 취소됐다. 내가 가장 기다리는 수원화성문화제도, 수원연극축제도 볼 수 없었다.

무더위에 지쳐 무기력하게 보내야했던 여름밤을 활기로 충전시켜주던 ‘수원문화재 야행’도 지난 주말(23일~25일)에야 겨우 열렸다. 그것도 반쪽짜리, 아니 내 생각에는 1/3쪽짜리도 아니었다. 공연은 모두 취소됐고, 체험, 마켓 등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이른바 ‘워킹 스루’ 형태 관람형 프로그램, 비대면 프로그램으로 진행돼 심심했고 흥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밤이 되면 기온까지 떨어졌다. 행사 관계자들이 불쌍해 보였다.

그래도 거르지 않고 이 행사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2020 수원문화재야행’을 위해 애쓴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제 10월의 남은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이곳저곳에서 가을노래들이 들려온다. 성악가들이 부른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도 좋고 대중가수 이용이 부른 ‘잊혀진 계절’도 좋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뒷부분 생략)...’

1982년에 발매된 노래다. 38년이나 지난 ‘유행가’지만 지금도 10월 말이 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노래다. 유행가는 수명이 짧다는 말이 무색하다. ‘10월의 국민가요’라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가사도 좋다. 박건호가 지었다. 박건호는 시인이기도 하다. 1969년 스무 살 나이에 미당 서정주 시인의 서문이 실린 '영원의 디딤돌'이란 시집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13권이나 냈다.

그러나 작사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용 ‘잊혀진 계절’, 박인희 ‘모닥불’ ‘끝이 없는 길’, 장재남 ‘빈 의자’, 장은아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패티김 ‘빛과 그림자’, 민해경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그대 모습은 장미’, 조용필 ‘단발머리’ ‘모나리자’, 정수라 ‘아! 대한민국’, 최진희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등 3천곡이나 된다.

나와 박건호와의 인연도 있다. 그는 나보다 일곱 살이 더 많았다. 임병호 시인과 함께 수원 장안문 근처 주막에서 만났는데 유명세와는 달리 참으로 겸손하고 따듯한 사람이었다. 건강이 안 좋았던 그는 술은 잘 하지 못했다. 그러면 또 어떤가. 술자리는 내내 즐거웠다.

얼마 후 그의 자필 서명이 있는 ‘그리운 것은 오래 전에 떠났다’라는 시집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얼마 후 이 세상을 떠났다.

‘잊혀진 계절’을 부른 이용도 수원과 깊은 인연이 있다. 이용은 수원 출신이다. 1957년생이니 나와 나이가 같다. 1982년에 발표한 데뷔곡 ‘바람이려오’는 큰 인기를 끌었다. 이어 발표된 ‘잊혀진 계절’은 더 큰 인기를 끌었다. 당대의 가수로 떠오른 것이다. ‘서울’, ‘사랑, 행복 그리고 이별’, ‘태양의 저편’ ‘첫사랑이야’, ‘후회’ 등도 방송사 인기곡 1위를 차지했다.

이용은 81년 국풍81 대학 가요제 금상을 수상함으로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8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상 (가수왕 상), 82·83·84년 MBC 10대 가수상, 82·83·84년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으며 82년엔 동아일보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2015년엔 제6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잊혀진 계절’은 원래 조영남이 부를 뻔 했단다. 그러나 조영남이 무슨 사정 때문에 이 곡을 발표하지 못했고 작곡가는 이용에게 이 노래를 줬다는 것이다. 원래 노래 가사도 ‘구월의 마지막 밤’이었는데 음반 발매 시기가 늦어져 ‘시월의 마지막 밤’으로 가사가 바뀌었다고 한다.

이용은 농담처럼 “잊혀 진 가수지만 10월 하순에는 부르는 곳이 많아서 1년 먹고 살 걸 모두 번다”고 말한다. 그처럼 이 노래는 매년 10월 말이면 되살아나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그러나저러나 허어, 또 가을이 가네.

어이, 술꾼들! 올해 10월의 마지막 밤에도 번개 연락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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