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고 있는데도 여행 한번 못 떠난 내가 그나마 위안을 받는 것은 항상 바라볼 수 있고 가벼운 산행과 산책을 할 수 있는 팔달산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팔달산은 단풍이 한창이다. 화성행궁과 어우러진 팔달산의 가을 단풍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7일은 정조대왕 탄신 268주년(1752년 음력 9월 22일)이었다. (사)화성연구회 회원 10여명이 화령전을 찾아 참배했다.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을 초청하지 못했고 정식 식순도 없는 매우 조촐한 행사였다.

(사)화성연구회 부이사장이기도 한 김준혁 교수(한신대)의 설명으로 행사 취지를 알게 된 관광객들도 조용히 동참해 고개를 숙였다.

행사를 간단히 끝내고 나오는 길, 일행은 화령전 뜰에 있는 은행나무 노란 단풍에 감탄했다가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은 팔달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점심을 마친 후엔 일행과 떨어져 나 홀로 팔달산에 올랐다. 색색의 단풍에 눈을 주며 회주도로를 걸었다. 날씨까지 따듯했다.

서북각루 인근엔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성 밖으론 억새꽃이 장관이었다. 백 명은 넘을 듯한 남녀노소 시민과 관광객들이 사진 찍느라 순서를 기다릴 정도였다.

수원화성은 그 자체로도 빛나는 역사적 건축물이지만 억새꽃과 어우러진 풍경은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화서문~서북각루 사이, 그리고 용연 옆, 동북공심돈 밖, 동남각루 밖의 억새꽃은 절경을 이룬다.

그런데 얼마 전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산책을 나만큼 좋아하는 김충영 (사)화성연구회 이사장과 동남각루 아래를 지나며 억새꽃을 감상하던 중 그가 물었다.

“왜 성 밖에 억새가 많은 줄 알아요?”

“거야 당연히 예쁘라고 최근에 심어 놓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내 대답은 틀렸다. 성을 축성하면서부터 심었다는 것이다. 심은 이유는 시계(視界)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긴 억새군락지에는 다른 나무들이 잘 자라지 않으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또 다른 이유도 있다고 한다.

억새꽃을 말려 불화살을 만드는 재료로 썼다는 것이다. 어, 이건 처음 듣는 얘긴데.

그러니 수원시가 성 밖에 억새를 심은 것은 화성의 복원 사업이었던 것이다. 그걸 모르고 멋있다고 감탄만 했으니...이래서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것이다.

수원시는 기존의 억새 군락지에 더해 용연부터 동북공심돈까지 성 밖에 억새밭을 조성했다. 아마 내년부터는 이곳도 또 하나의 명소가 될 것이다.

이래서 수원이 좋다. 이 가을이 가기 전, 억새꽃이 모두 바람에 날려가기 전 자주 가봐야겠다. 돈 낸다고 볼 수 있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풍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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