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사)화성연구회가 주최·주관한 ‘2020 낙성연 토크콘서트’가 수원남문 로데오 아트홀에서 열렸다. 원래는 9월 중 ‘수원 문화재 야행’ 때 화성행궁에서 하기로 한 행사였지만 코로나19로 계속 미루다가 이제야 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도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 추세여서 현장 공개를 하지 못하고 비대면 유튜브 라이브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방송 경험이 많은 화성연구회 부이사장 김준혁 한신대 교수의 매끄러운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엔 이달호(역사학자, 수원화성연구소장), 정수자(시인, 문학박사), 조영선(문화유산교육사), 한정규(서예가, e수원뉴스 으뜸시민기자)씨 등 화성연구회 회원들과 허용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안영화 아트컴퍼니 예기 대표 등이 토크콘서트 패널로 참여했다.

또 필자를 비롯, 김애자·정수자 시인 등 화성연구회 회원들이 낙성연과 관련된 창작시를 낭독했다. 조주선 한양대 교수의 판소리와 이오훈 국립국악원 단원의 대금연주, 화가이기도 한 조풍류 고수의 공연도 행사의 격을 높였다.

필자도 출연한 행사라 쑥스럽기는 하지만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아주 수준높은 콘서트였다고 자부한다.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필자는 ‘그대들, 비록 그 자리 초대받지 못하였으나-그날 수원에서의 잔치, 낙성연(落成宴)’이란 시를 낭독했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는 수원화성 축성의 주인공인 석공과 목수, 기와장인 등 동원된 기술자의 이름이 수록돼 있다. 이들이 사실상 화성 축성의 주역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단상 위 낙성연 주빈으로 초대받지 못했다.

화성이 완공된 1796년(정조20) 그해 음력 10월 16일 화성 낙남헌 일대에서 낙성연이 열렸다.

축성 공사에 참여한 모든 감독관, 일꾼,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정조대왕이 직접 지시해 개최한 잔치다.

물론 축성 공사에 참여한 일꾼 가운데 수원과 인근에 살던 사람들은 이 행사를 관람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기의 일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므로 사실상 이 잔치를 제대로 즐긴 사람은 한양의 고관대작들과 수원지방의 향리·유지, 그리고 백성들일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정조대왕이 환생, 성역의 주인공인 민초들을 초대해 잔치를 벌이는 장면을 상상하며 쓴 시를 낭독했다.

‘윤복쇠, 김대노미, 김개불, 김쇠고치, 지악발, 이자근노미.../그대들 비록 그때 그 자리 초대받지 못하였으나/저 성벽과 누각, 수원천에 비치는 달빛/만천명월(萬川明月)의 주인은 그대들일세//동서남북 그리고 여기/오방기 흔드는 바람도 그대들임을 내 잘 알지//그대들 원력(願力)으로 다진 터에/눈물 수천줄기 모여 흐르던 내에/저 좀 보아/굳은 맹세처럼 성이 솟았네//이 자리에 없으나/나의 마음 속 큰 술잔 받으시게//이어인노미, 김육손, 김노랭이, 황시월쇠, 정춘득...//기세 푸르던 장용영 군사들/춤추고 노래하던 여령들과/장안문 밖 새술막거리 주모/그대들도 오늘밤은 불취무귀(不醉無歸)//비록 그날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였으나/김오십동이, 강허무쇠, 최말불, 김순노미, 박작은여출/1796년으로부터 224년이 흐른 2020년/오늘에서야

그대들에게 내미는/아직도 여여(如如)한 이 마음 한잔 받아주시게’

코로나19와 예산 사정으로 축소되고 비공개로 진행된 행사였지만 매우 뜻 깊고 유익한 행사였다. 낙성연이 앞으로 어떻게 치러져야 하는가를 깊게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옛날 낙성연을 원래대로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인의 눈높이를 맞춰 대중성도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모두 공감했다.

그리고 화성은 물론이고 낙성연 관련 연구에도 더욱 박차를 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 의미 있는 행사였다.

사단법인으로 탄생한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축적한 화성연구회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그날 우리는 오랜만에 정조대왕의 ‘불취무귀’를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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