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칼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눈 덮인 화성
상태바
[광교칼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눈 덮인 화성
  • 김우영 논설위원
  • 승인 2021.01.11 15: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우영 논설위원 / 시인

 

눈이 제법 왔다. 수원천을 따라 산책을 하다가 발걸음을 화성 성곽으로 옮긴다. 요즘 나의 산책길은 정처(定處)가 없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 몸도 함께 움직인다. 내 마음이라...

깨달음의 스승들은 그 마음을 보여 달라고 한다. 하지만 보여줄 마음이란 게 실체가 없다. 그러니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란 말도 취소. ‘그냥’이라고 해야겠다.

눈내린 화성 방화수류정. (사진=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눈내린 화성 방화수류정. (사진=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그냥 화성성곽을 걸었다. 한낮에도 영하 10도 정도로 추웠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 심각한 추위를 못 느꼈다. 요즘 나오는 옷이나 신발, 모자 등 방한용품이 얼마나 좋은가. 게다가 코로나19로 마스크까지 얼굴을 덮었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20년만의 강추위’라고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이런 추위는 보통이었다. 세수를 하고 문고리를 만지면 손이 쩍쩍 얼어붙었다. 방안에 놔둔 요강의 오줌이 얼 정도였다.

그런데도 열심히 산으로 들로 얼음판 위로 뛰어다녔다. 검정고무신에 더덕더덕 기운 나일론양말을 두 세 겹 겹쳐 신어도 발은 얼어붙기 일쑤였다. 썰매를 타다가 물에 빠진 날 양말을 말린답시고 모닥불에 태워먹은 날이 부지기수, 그때마다 어머니에게 혼났다.

뽀드득 뽀드득 성 위에 쌓인 눈을 밟으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눈 쌓인 뒷산 비탈길에 부모 몰래 가져온 비료 포대를 깔고 미끄럼 타는 재미는 겨울 추위를 이기게 해줬다.

화성 곳곳 비탈에도 눈이 많이 쌓였다. 이 추위 속에서도 아빠와 함께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티 없는 웃음소리가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화성 성벽 눈밭은 아이들의 눈썰매 놀이터가 됐다.

어느덧 60대 중반에 들어선 나도 저기에 어울리고 싶다. 그러면 한때나마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냥 이대로가 좋겠다. 웬만한 욕심 버려두고 이렇게 허허롭게 걸을 수 있는 지금이 더 좋다.

좋다. 참 좋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이 있는 수원에 사는 것이 좋고, 나이 들어 일에 치이지 않고 이렇게 여유로워서 좋다. 지금은 잘 모이지 못하지만 맥주나 막걸리를 함께 마실 수 있는 따듯한 친구들이 있어 좋다.

수원화성을 쌓고 화성행궁을 건축하고, 사방에 저수지를 만들도록 한 정조대왕께도 고맙다.

또 한사람, 이 수원화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 세계가 주목하는 수원으로 만들어준 심재덕 전 시장에게도 두 손을 모은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수원화성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사진=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수원화성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사진=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고인은 누구보다도 수원을 사랑했고 문화와 역사인식이 뛰어났다.

수원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수원화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고자 했지만 정부 담당부서의 의견은 비관적이었다.

심시장은 정부 관계자의 만류를 뿌리치고 단신 프랑스 파리로 날아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가 열리는 현장에서 세계 각국의 위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설득시켰다. 심시장의 열의에 감동한 위원들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등재를 성공시킨 것은 온전히 그의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독도문제와 이순신장군, 일제강점기 자료수집과 연구에 일생을 바친 사운 이종학 선생이 사비를 들여 만든 ‘화성성역의궤’ 영인본이 큰 무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화성을 걸을 때면 이분들을 떠올린다. 정조대왕은 만나지 못했지만 고인이 된 심재덕·이종학 선생과는 제법 생전의 인연이 깊었으니 더욱 그렇다.

오늘따라 화성이 더 아름답고 정감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