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영의 수원현미경(2)] 화성과의 인연은 우연한 생각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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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의 수원현미경(2)] 화성과의 인연은 우연한 생각에서 시작됐다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1.01.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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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재덕 전 수원시장, 민선 1기 수원시장 당선 후 화성행궁 복원사업 본격 추진
- 1997년 12월 6일, '화성' 세계문화유산 등재
- ‘화성을 사랑하는 모임’(화사모)서 2000년 '사단법인 화성 연구회' 출범
화성세계유산 기념표석.(사진=김충영)
'세계문화유산 화성' 기념표석.(사진=필자 김충영 박사)

화성(華城)이 '세계문화유산'이 됐다는 방송은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나와 화성과의 본격적인 인연은 민선시대가 도래하면서 민선 1기로 당선된 심재덕 수원시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심재덕 시장은 수원 출신으로 오랫동안 수원문화원장을 역임하면서 수원의 역사와 문화.관광 분야에 관심을 갖고 시민운동을 전개해왔다. 그 중에서도 인상깊은 것은 '화성행궁 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해 시민운동으로 추진한 일이다. 그리고 민선 1기 수원시장으로 당선된 후 화성행궁 복원사업을 1996년부터 수원시의 중점사업으로 본격 추진하게 됐다.

심 시장은 화성행궁 복원사업이 정상궤도에 접어들자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1997년 12월 6일, 드디어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게 된다. 당시 나는 수원시 건설국 도로과장으로 있었다.

1997년 12월 4일 오후, 수원시청 청내 방송에서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심의 통과됐다는 방송이 나왔다. 방송을 듣는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앞으로 화성을 찾는 관광객이 물밀듯이 많이 찾아올 텐데 과연 수원은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돼있는가’라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다음날 단단히 마음을 먹고 화성 성곽을 안으로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때 소감은 실망이었다. 화성 주변에는 불량한 건물이 성곽 주변에 즐비했고, 성곽 주변에는 변변한 주차장 하나 없는 실정이었다. 과연 이런 모습으로 국내외 관광객을 맞을 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내 업무 범위 내에서 개선계획을 찾아보아야 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함께 근무하는 도로보수를 담당하는 이재관 계장과 도시계획을 담당하는 최호운씨에게 내 생각을 말하니 그렇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성곽을 답사하면서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세 사람은 화성에 너무 무지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나름 화성에 관심이 많은 여러 분야 사람들을 합류시켜 정기적인 답사를 진행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렇게 하여 건축사무소를 하는 김동훈 소장, YMCA 활동을 하는 함수남 씨, 카페와 골동품매매업을 하던 최봉선 씨, 조경설계를 하던 강수주 씨, 도시경관 전문가 여상헌 씨 등이 합류, 2주에 한 번씩 화성을 답사했다.

이렇게 하여 답사 횟수가 늘어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소문이 퍼지자 수원시청 직원들이 관심을 보였다. 첫째로 찾아온 이는 당시 '늘푸른수원' 김우영 편집주간이었다. 나와 만나 대화를 한 뒤 본인과 평소 친분이 있는 이용창 사진작가, 학예연구사 이달호 박사, 역사학자 김준혁·한동민 박사 등 전문가 들이 합류하면서 반년이 안 되어서 20여 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당시는 모임형식을 갖추지 않을 때라서 회장도 없이 최호운씨가 총무 역할을 담당했는데 후일 ‘화성을 사랑하는 모임’(화사모)이라는 명칭으로 활동하게 됐다. 1999년에는 회원이 30여 명이 넘어서자 내친김에 사단법인 등록을 추진하자는 의견이 모이면서 1년여 준비 끝에 2000년 7월 21일 발기인 총회를 거쳐 2001년 5월 21일 '사단법인 화성 연구회'가 출범을 하게 된다.

화성연구회 현판식. 왼쪽이 필자.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화성연구회 현판식. 왼쪽부터 필자, 한용교 고문, 조웅호 고문, 김이환 이사장, 신희식 부이사장, 강주수 이사.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한편 나는 수원시청 도로과장에서 1998년 10월 전공인 도시계획과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당시 '세계문화유산 화성'은 '화성관리사무소'에서 유지관리를 담당했고, 문화재 업무는 문화관광과 문화재계에서 맡았다.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이 돼 2년 정도가 지나자 관광객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심재덕 시장은 화성 주변을 계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업무 분장 상에는 화성 주변에 대한 담당 부서가 없었다. 심재덕 시장은 도시계획과장인 나를 불러 화성 주변 정비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이미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동시에 화성에 관심을 갖고 모임도 하고 공부를 하던 때인지라 화성 주변 계획수립업무를 맡겠다고 대답했다. 정식으로 업무분장을 개정해 화성 주변 업무를 도시계획과 업무에 편입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화성은 나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됐고 평생지기가 됐다. 나는 이후 화성과 관련된 일을 본격적으로 해나갔는데 '화성연구회'가 많은 뒷받침이 돼 주었다.

'화성사랑모임' 모습.(사진=이용창 사진작가)
'화성사랑모임' 에서 김이환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이용창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