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영의 수원현미경(6)] 수원 첫 나들이가 역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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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의 수원현미경(6)] 수원 첫 나들이가 역사가 되다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1.02.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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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시립공중목욕탕 모습.(사진=수원시 포토뱅크)
당시의 시립공중목욕탕 모습.(사진=수원시 포토뱅크)

나의 수원 첫나들이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나는 화성군 우정면 원안리에서 농사를 천직으로 지어오신 부모님 사이에서 딸 일곱에 아들 셋의 10남매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1963년 셋째 누님이 시집을 갔고 2년 후인 1965년 겨울 방학 때 일이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작은 형과 함께 수원으로 시집간 셋째 누님 댁을 찾아갔다. 당시 셋째 매부는 수원에서 서울을 오가던 직행버스 운전기사를 했다. 하루는 매부가 나와 형에게 밖에 나가지고 하셔서 따라 나섰는데 처음 간곳이 팔달문 옆에 있는 시립공중목욕탕이었다. 목욕탕은 처음인지라 옷벗기가 창피했던 기억이 난다.

목욕탕에 들어가서는 이발을 하고 탕에 들어갔다. 그런데 물이 너무 뜨거워 탕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옆을 보니 물을 바가지에 떠서 몇 차례 뿌리고 욕탕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 하고는 겨우 욕탕에 들어갈 수 있었다. 목욕을 하고 나와 남문시장 안에 있는 시민관 극장에 가서 영화 ‘불나비 인생’을 보았다.

영화를 보고는 주변에 있는 음식점에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이 ‘화춘옥’이었다. 양념을 한 소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는데 입에서 살살 녹는 것이 참으로 꿀맛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때 먹은 양념갈비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참에 화춘옥에 대해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수원의 원로인 조웅호 선생께서 화춘옥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조 선생은 화춘옥 인근에서 포목점을 해서 화춘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화춘옥이 생기기 전 일제 강점기 영동시장에 화춘제과점이 있었다. 주로 부채과자를 만들어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화춘제과점은 이귀성씨와 형 이춘명씨가 열었는데, 1945년경 이귀성씨가 화춘옥을 차려 독립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해장국과 설렁탕, 육개장, 비빔밥, 냉면 등을 주로 했는데 음식 맛이 좋은데다 후하고 값까지 싸서 칭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해장국에 갈비를 듬뿍 넣고 끓여냈기 때문이다. 이어 갈비에 양념을 한 다음 숯불에 구워내어 넉넉히 내어놓자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당시 이귀성씨가 지병이 있어 운영이 어려워지자 당시 수원시청에 다니던 아들이 운영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1950년대 박정희 소장이 사냥을 왔다가 화춘옥을 찾게 되었는데 후일 5.16이 성공하자 대통령이 돼 수원을 방문할 때 화춘옥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이것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대통령이 다녀간 집이라는 소문이 났고 화춘옥은 성공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이후 화춘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나가서 갈비집을 열면서 수원이 '갈비고을'이 됐다고 한다. 화춘옥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출입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또 한편으로는 고 박정희 대통령 때문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옛 화춘옥 골목 모습.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옛 화춘옥 골목 모습.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1970년대 말 고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순시를 하고 청와대로 귀가하던 중 수원갈비 생각이 나서 당시 염모 도지사에게 연락을 하고 화춘옥을 찾았다고 한다. 대통령이 화춘옥에 온다고 하자 화춘옥 사장은 대통령을 잘 모시고자 하는 생각에서 흰쌀밥을 새로 지어 갈비와 함께 식탁에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염 지사에게 “당신 관할구역은 보리 혼식을 안하는구먼!” 하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대통령 일행은 떠났지만 다음날 공무원들이 들이 닥쳤다. 화춘옥은 왜 보리혼식을 안하냐고 야단을 치고는 돌아가서 영업정지를 내렸다는 것이다. 1970년대는 식량이 부족해 전 국민이 보리혼식을 의무적으로 철저하게 시행할 때였다.

대통령을 잘 모시기 위해 흰쌀로 밥을 지은 것이 도리어 화가 됐던 것이다. 이 일로 화춘옥은 서서히 손님이 떨어지게 되면서 영업이 안 되자 음식점을 접게 됐다고 전한다.

화춘옥 자리가 시민백화점으로 변했다.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화춘옥 자리가 시민백화점으로 변했다.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세월은 참으로 덧없는 것 같다. 작은 형도, 셋째 매부도 세상을 떠났고 시립공중목욕탕도, 시민관극장도, 화춘옥도 모두 사라졌으니 말이다. 이제는 목욕탕은 없어졌고 그 자리는 그릇전으로 바뀌었다.

시민관극장은 팔달산에 시민회관을 지어 이사를 갔다. 그 자리는 크로바 백화점으로 바뀌어 이름을 날리다가 지금은 옷가게로 변했고 지하에는 크로바 콜라텍이 있어 그곳이 크로바 백화점이 있었음을 설명하는 듯하다. 세월은 이렇게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며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