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영의 수원현미경(7)] 장안문 성곽 잇기, “어떤 xx가 이런 짓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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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의 수원현미경(7)] 장안문 성곽 잇기, “어떤 xx가 이런 짓을 했어요?”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1.02.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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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이 이어진 장안문 전경.(사진=이용창 사진작가)
성곽이 이어진 장안문 전경.(사진=이용창 사진작가)

민선 1기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심재덕 수원시장은 수원문화원장 시절 시민운동으로 전개한 화성행궁 복원사업에 전념했다. 한편으로는 화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고 이를 실천했다.

문화재 보존·관리 중심 정책에서 문화재 활용 정책으로의 전환이었다. 심재덕시장은 집은 사용해야만 오래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특히 문화재를 진열장에 보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같은 맥락에서 수원시는 화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차원에서 사대문 문루를 모두 열어 관광객이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화성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9개소가 단절되거나 철거됐다. 이 가운데 도로개설로 인해 성곽이 단절된 곳이 7개소, 도로에 편입돼 헐린 곳이 2개소나 됐다.

장안문 철재육교.(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장안문 철재육교.(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수원시는 단절된 구간의 성곽을 교량형식으로 연결하는 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장안문 구간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 도로개설 목적으로 철거된 장안문 양편을 성곽과 연결해야만 했다.

당시 수원시는 성곽과 어울리는 교량을 만들고자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원형과 구별될 수 있는 철교를 건설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결국 1996년 4월, 수원시의 의도와 다르게 철재 육교가 설치됐다. 1998년 12월 말까지 시한부 조건이었다. 장안문 양편에 철교가 들어서자 장안문과의 부조화를 두고 극심한 찬반 논쟁이 일었다.

장안문 철재육교 상판.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장안문 철재육교 상판.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언론과 방송까지 합세했다. 장안문 철교가 연일 TV화면에 등장, 장안문은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철교는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로 인해 존치기간이 연장됐다. 월드컵축구 경기가 끝나면서 장안문 철교에 대한 존치문제가 재론됐다.

수원시는 일단 철재 육교를 철거하고 장안문과 어울리는 교량을 설치하는 조건으로 문화재청에 지원을 요청해 국비 20억원을 보조받게 됐다. 경기도로부터도 4억3000만원을 보조받음으로써 장안문과 양측 적대를 연결하는 보도육교를 만들어야 했다.

이즈음 (사)화성연구회 일부 회원들은 이참에 단절된 장안문을 연결하자고 진담 반  농담 반 의견을 제시했다. 화성을 담당하는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했다. 말로 한 것을 현실에 도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장안문은 1번국도가 경수산업도로로 바뀌기 전까지 삼남지방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또한 화성의 정문이었다. 도로 교통차원에서는 팔달문 다음으로 중요한 지점이라서 장안문 양편을 성곽으로 연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이미 도로계장과 도로과장을 5년 가까이 담당해서 수원시 도시계획이나 도로 여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하루는 장안문 주변의 현황도면을 보고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한 가지 묘책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것은 잘려진 한쪽은 온전하게 연결하고 또 한쪽은 육교를 설치하면 교통문제도 해결하고 섬으로 된 장안문도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면을 가지고 현장에 나가 가능성을 검토했다.

현장여건은 만만치는 않지만 가능성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는 한쪽구간만 사용해 도로를 유지할 경우 도로가 직선을 유지해야 하는데 원으로 된 로터리를 반은 막고 반을 사용해야하므로 장안문 구간은 반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도로만으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안문 성곽잇기 준공사진.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장안문 성곽잇기 준공사진.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둘째로는 장안문이 로터리로 활용되고 있어 동서남북 방향에서 U턴이 돼 교통소통이 원활한 점이었다. 이곳을 사거리 체계로 전환할 경우 장안문 일원의 교통불편이 초래되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반대로 장안문의 단절된 부분을 한쪽을 연결할 경우의 장점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았다. 첫째는 일제가 헐어버린 자존심을 찾는 일이었다. 둘째는 섬이 돼 바라만 보던 장안문을 시민·관광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이번 기회가 아니면 잘려진 장안문 양편을 다시는 손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런 생각을 담당직원들과 (사)화성연구회 회원들에게 물었다.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한번 해볼 만한 사업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장안문 성곽 서쪽은 연결하고 동쪽은 육교를 설치하는 안을 문화재청으로 제출, 문화재 형상변경 허가가 났다.

성곽 잇기 공사 설계과정이 끝나고 시공업체가 선정됐다. 공사과정이 남은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이제 부터는 100여 년간 사용된 로터리를 다소 불편한 사거리로 적응을 해야 한다.

시공업체는 2005년 12월 26일 선정됐었지만 만반의 준비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2006년 6월 중순에야 실제 공사가 시작됐다.

첫째로 할 일은 철제육교를 철거하는 일이었다. 난제는 양쪽 육교를 한 번에 철거하면 교통이 두절되기 때문에 양쪽을 나누어 해야만 했다.

먼저 철거를 시작한곳은 동쪽 육교였다. 새벽 6시경 펜스 설치 작업이 마무리 되자 장안문 로터리는 사거리 체계로 전환됐다.

공사 착공 전 2개여월을 안내하고 홍보했으나 막상 사거리로 변하자 장안문을 통과하는 운전자들은 크게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공사 착공 날은 하루 종일 차량이 막히는 상황이 발생했다. 장안문 공사로 인해 수원의 구시가지 일원은 하루 종일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그때 잠깐 후회를 하기도 했다. ‘평범하게 육교를 설치했으면 이런 문제가 오지 않을 것을 나는 왜 이런 모험을 했는가? 이 교통체증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걱정까지 거듭했다.

이런 교통체증 문제는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1주일쯤 지나자 시민들이 알아서 장안문을 통과하지 않는 노선으로 우회함으로써 완화되기에 이르렀다.

장안문성곽 잇기 공사는 시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주면서 2007년 6월 8일 완공됐다. 사업내용은 성곽복원 30m, 보도육교설치 27m, 공사비는 32억3000만원(국비 20억원, 도비 4억3000만원, 시비 8억원)이 투입됐다.

성곽잇기가 완성된 장안문 전경.(사진=이용창 사진작가)
성곽잇기가 완성된 장안문 전경.(사진=이용창 사진작가)

가끔 택시를 타고 장안문을 지날 때면 운전기사에게 의견을 물어본다. 그러면 택시기사들로부터 100% “어떤 xx가 이런 짓을 했냐”는 답변이 돌아온다.

또 한 가지는 장안문 밖의 음식점과 상점들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잘나가던 어떤 음식점은 장안문이 사거리가 되면서 접근이 어려워져 손님이 오지 않는 바람에 폐업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지금까지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래도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장안문을 통해서 성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갖는다.

장안문 성곽잇기는 화성의 자존심을 회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