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영의 수원현미경(9)] 신목(神木)이 된 화성행궁 느티나무 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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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의 수원현미경(9)] 신목(神木)이 된 화성행궁 느티나무 고목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 승인 2021.03.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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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행궁앞 느티나무.(사진-=필자)
2006년 행궁앞 느티나무.(사진-=필자)

일제의 강제 병합으로 화성행궁의 용도는 폐기됐다. 정당인 봉수당은 자혜의원이 됐다. 이후 우화관은 수원공립학교(신풍초등학교 전신)가 됐고, 북군영은 수원경찰서로, 남군영은 토목관구로(후일 경기도여성회관) 변했다. 낙남헌은 수원군청으로, 이후 신풍학교로 편입됐을 때에는 교무실로 쓰이기도 했다.

경기도립병원과 수원경찰서 앞을 지나갈 때면 경찰서 정문 앞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큰 그늘을 만들어 주는 것을 보고 ‘참 좋은 나무가 경찰서를 지켜주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다 그 옆 도립병원 정문왼편에도 큰 느티나무 2그루가 있어서 늘 눈여겨보곤 했다.

1977년 경기도립병원 입구 경기도여성회관옆 느티나무.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1977년 경기도립병원 입구 경기도여성회관옆 느티나무.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1977년 당시 수원경찰서앞의 느티나무.(사진=이용창 사진작가)
1977년 당시 수원경찰서앞의 느티나무.(사진=이용창 사진작가)

그 시절 이곳이 화성행궁자리였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내가 신풍학교를 다녔더라면 알 수 있었을까. 이곳에 있던 느티나무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궁궐 앞에 괴목을 심은 기원은 중국 주나라 때부터라고 전한다. 3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나무그늘 밑에서 어진 임금과 함께  선정을 베푼다는 의미로 심었다고 한다.

이후 한문 문화권(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궁궐 앞에 반드시 괴목(느티나무 또는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이 세 그루 나무를 삼괴(三槐), 품자(品字)나무라고 한다. 조선시대 한양에 있던 5대 궁궐과 여러 곳의 행궁 앞에도 모두 3그루의 괴목을 심었다고 한다.

2021년 행궁앞 느티나무.(사진=필자)
2021년 행궁앞 느티나무.(사진=필자)

그러나 다른 궁궐의 삼괴목(三槐木)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모두 사라졌다. 대한민국에서 온전한 삼괴목(三槐木)운 화성행궁이 유일하다. 화성행궁은 철거됐어도 삼괴목이 화성행궁을 굳게 지켜줘 화성행궁의 체모를 높여주었다는데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화성행궁에는 귀중한 나무가 한그루 더 있다. 화성행궁이 복원되기 전 수원경찰서 안마당에 자리한 600여년이 넘은 느티나무다. 이 나무는 정조대왕이 화성행궁을 건립하기 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화성행궁을 지은 것이 1789년이었으므로 행궁을 짓기 전에 이미 400여년이 된 괴목(槐木)이었다.

1977년 수원경찰서 안마당 느티나무.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1977년 수원경찰서 안마당 느티나무.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그런데 이 나무 옆에 수원경찰서가 자리를 잡았다. 수령이 600년이 넘다보니 나무는 무성했으나 나무 가운데가 비어있는 형태였다. 또 가지가 무성해서 경찰서 건물을 가리고 낙엽이 떨어져 불편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원경찰서는 고민 끝에 나무를 전지하기로 하고 나무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을 수소문해 가지를 정리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 나무는 지상에서 3~4미터 높이에서 5개의 가지로 자란 멋진 정자나무였다.

행궁안 느티나무 잘려진 부분. (사진=필자)
행궁안 느티나무 잘려진 부분. (사진=필자)

그런데 일을 맡은 사람은 느티나무를 보자 욕심이 생겨 건물 쪽으로 뻗어있던 제일 큰 가지 밑둥을 잘랐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뭇가지를 다듬는 차원이 아닌 나무의 수형을 망치는 강전지(强剪枝)를 함으로써 당시 수원경찰서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기자들은 분개해 기사화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무 업자는 이 일로 한동안 숨어 지냈다고 한다. 후일 나무 업자는 자른 가지를 목공예하는 00에게 사지 않겠냐고 제의를 해 당시 목공예를 하던 분이 이 나무의 중요성을 알고 구입했다고 한다. 그 분은 나무를 잘 말려 문갑 2개를 만들어 하나는 팔고 하나는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일부는 곡반정동 개인주택 2층 계단을 만드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행궁안 느티나무로 만든 문갑. (사진=필자)
행궁안 느티나무로 만든 문갑. (사진=필자)

이후 세월이 한참 지나 화성행궁 복원사업이 본격 진행되기 직전이었다.  수원경찰서 본관 건물은 행궁 앞의 도로와 나란히 있었다. 그리고 별관건물은 신풍초등학교 담장을 경계로 본건물 뒤편으로 민원실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고, 가운데 마당을 두고는 도립병원 쪽에 전투경찰대 막사 건물이 있었다. 그 본관건물과 민원실이 접하는 모퉁이에 느티나무가 있었다.

당시 경찰서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전경들이 처리했다고 하는데 쓰레기를 버릴 곳이 없자 가끔 느티나무가 갈라져 비어있는 공간에 쓰레기를 넣고 소각을 했다고 한다. 한번은 쓰레기를 너무 많이 넣고 태우는 바람에 나무에 불이 붙어 고사하고 말았다.

행궁안 느티나무 불이 난 부분에서 필자 아들 김주송과 친구들이 포즈를 취했다. (사진=필자)
행궁안 느티나무 불이 난 부분에서 필자 아들 김주송(가운데)과 친구들이 포즈를 취했다. (사진=필자)

2006년 내가 화성사업소에서 근무 할 때의 일이다. 나무가 너무 많이 상해서 방부처리를 할 시기가 왔다. 방부처리를 하는 작업자들은 나무의 부패정도를 확인하면서 가지치기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오후에 작업현장에 나가보니 다듬으면서 나온 놓은 가지가 제법 많았다. 나는 그때까지 나무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나무의 중요성을 몰랐다. 그런데 전지해놓은 가지를 보자 언제인가 요긴하게 쓰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원을 시켜 나뭇가지를 창고에 갖다 놓게 했다.

행궁안 느티나무 방부처리 작업전 모습.(사진=필자)
행궁안 느티나무 방부처리 작업전 모습.(사진=필자)

버리려고 한 잔가지들을 살펴보다가 썩은 가지가 눈에 들어 왔다. 뒤집어보니 가운데 심이 남아 있는데 꼭 지팡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썩은 부분을 털어내고 사무실에 가져다 두었다. 시간이 지나 화성행궁 1단계 복원사업이 마무리되고 현판작업을 할 때의 일이다.

행궁안 느티나무 방부처리가 끝난 모습.(사진=필자)
행궁안 느티나무 방부처리가 끝난 모습.(사진=필자)

당시 현판 복원작업은 무형문화재 각자장(刻字匠) 철재 오옥진 선생의 수제자 이면서 전수자로 지명된 고원 김각한(후일 각자장 106호) 선생이 맡았다. 하루는 내 사무실을 방문한 고원선생에게 썩은 나뭇가지를 보여드렸다. 그러자 그것을 달라고 하셔서 드렸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 멋진 지팡이를 들고 오셨다. 이런 연유로 화성행궁의 600년 된 느티나무는 지팡이와 문갑 유품 2개를 남기고 있다.

행궁안 느티나무 가지로 만든 지팡이. (사진=필자)
행궁안 느티나무 가지로 만든 지팡이. (사진=필자)

이후 방부 작업이 끝나자 나무 뒤쪽에 팔뚝정도 살아남은 줄기에서 싹이 자라기 시작하더니  제법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이후 화성행궁 관람객 중 나무 앞에서 예를 갖추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화성사업소에 근무하던 김준혁 학예사(현 한신대학교 교수)의 제의로 나무 유래를 담은 팻말을 세우게 됐다. 이런 연유로 화성행궁의 괴목(槐木)은 소원을 비는 ‘신목(神木)’이 됐다.

끝으로 첨언을 한다면 신목의 유품울 가까운 행궁전각에 전시하는 것은 어떨가 생각해본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지팡이는 당연히 기증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