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1996년 ‘세계 연날리기대회’가 생각났다.                

정월 대보름이 일주일도 더 지났지만 오늘도 화성행궁 광장과 창룡문 앞 잔디밭 하늘엔 연들이 많이 떠 있다.

내 어렸을 적엔 정월 대보름 전에 모두 날려 보냈다. 지난해 액을 모두 갖고 가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멀리 날아간 연은 나뭇가지에 걸려 있거나 논두렁에 내려앉는데 이걸 발견한 이들은 거두어 태워줬다. 다시 쓰지는 않았다. 아무리 잘 만든 연 일지라도 남의 액을 덮어 쓰기 싫었기 때문이다.

산책 중 행궁광장 하늘에 떠 있는 연들을 보다가 문득 1996년 ‘수원화성 축성 200주년’ 기념행사 중 하나로 열린 ‘세계 연날리기 대회’가 생각났다.

1996년 수원화성축성 200주년 기념행사로 수원 서호에서 열린 세계연날리기대회. (출처=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기획과)
1996년 수원화성축성 200주년 기념행사로 수원 서호에서 열린 세계연날리기대회. (출처=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기획과)

1994년 7월 29일 당시 심재덕 수원문화원장이 제안하고 추진한 ‘수원성(화성) 축성 200주년 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가 열렸다. 1996년이 수원화성 축성 2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미리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어 1995년 2월 13일 창립총회를 개최함으로써 이 사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나도 그때 수원화성축성 200주년 기본 계획에 참여했다.

200주년 기념사업은 ▲역사 속의 수원(화성행궁 복원, 성곽 복원 및 정비, 수원시사 편찬 등 11개 사업) ▲살맛나는 수원(수원성 국제연극제 : 현 수원연극축제, 한국 전문합창제, 수원갈비축제, 남문시장 거리축제, 수원문집 발간 등 22개 사업) ▲아름다운 수원(김준룡장군 전승비 보존 정비 등 6개 사업) ▲세계 속의 수원(국제 컨벤션센터 건립, 세계 연날리기대회 등 6개 사업) ▲쾌적한 수원(교통관제센터 설치, 시외버스 터미널 이전, 수원시 종합안내센터 설치 운영, 벽화사업 등 6개 사업) 등이었다. 국제 컨벤션센터 건립사업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현실화됐다.

이 사업들 가운데 세계 연날리기대회가 있었다.

1996년 '수원화성축성 200주년 기념 세계민속 연날리기 대회'가 서호 옆 농촌진흥청 운동장에서 열렸다. 이 행사엔 한국은 물론 세계 10여 개국에서 참가한 연 동호인들이 각자 특색 있고 전통 있는 다양한 연을 선보였다.

1996년 서호에서 열린 세계연날리기대회. (출처=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기획과)
1996년 서호에서 열린 세계연날리기대회. (출처=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기획과)

다음은 지난해 수원문화원이 발행하는 계간 ‘수원사랑’에 실린 나의 글 가운데 일부다.

참가국은 많지 않았지만 모두들 아주 다양한 연을 가지고 나와 자국의 전통문화를 보여줘 관람객들이 탄성을 금치 못했다.

특히 우승자인 서울 변하일 씨는 수원화성 모양의 연 수백 개를 연결한 작품을 하늘에 띄워 보는 이들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

이 때 심시장은 세계연날리기 행사를 계속할 것이냐는 내 질문에 “연날리기는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수원에서는 굉장히 어렵다. 격년제로 할까 생각도 해봤는데 성공여부가 투명하지 못해 어려울 것 같다.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해 봐도 연속성을 갖기는 무리가 있다”고 대답했다.

그때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그의 말이 있다. 세계 각국의 연들이 일제히 떠올라 서호 상공을 가득 메우는 장관이 펼쳐지자 악동 같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봐, 김 주간. 저 연들 좀 봐. 장관이네. 근데 저 연은 술 마셨나, 뱅글뱅글 도네. 허허...”

수원문화원의 연날리기 행사는 1988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2월29일 연무대에서 수원화성축성 192주년 기념 ‘제1회 전국 민속 연날리기대회’가 열렸다. 종목은 연 높이 날리기, 연줄 끊기, 창작연 띄우기 등의 종목으로 진행됐는데 이 대회에는 전국에서 150여명의 연동호인과 일본의 연동호인들도 참가했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1999년 연무대에서 열린 대보름 민속놀이 한마당 창작연날리기 부문.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1999년 연무대에서 열린 대보름 민속놀이 한마당 창작연날리기 부문.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두 번째 행사는 1989년 2월 19일 연무대에서 열렸는데 추운 날씨임에도 4500여명의 관중이 몰려 분위기는 뜨거웠다.

이 해부터 행사 명칭이 ‘대보름 민속놀이한마당’이 됐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나 올해와 지난해엔 코로나19로 열리지 못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행궁광장에 나와 연을 날린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