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등학교 시절, ‘야생초’라는 동인회를 만들어 동인지를 1년에 두어 권씩 만들었다. 너나 나나 돈이 없던 가난뱅이 집안 아들이어서 우리가 직접 종이를 사오고 등사를 했다. 제본도 직접 했다.

남는 교실 하나를 문예부 전용 공간으로 사용했는데 책을 만든답시고 밤늦게까지 교실에 있다 보면 막차를 놓치는 일도 빈번해 여럿이 교실에서 함께 잤다.

이제 고백이지만 그렇게 굳은 차비로는 소주를 사다 인근 송록원(현 장안문 밖 동성아울렛 인근) 가운데 목련 나무 밑에서 먹기도 했다. 문학을 한다는 치기였다.

그러다 한번은 들켰다.

봄날 밤 교복을 단정히 입은 문학소년들은 장안문 밖 목련꽃 그늘 아래 모여 천하를 다 가진 듯 어른 흉내를 내며 술을 마셨다. 어설픈 자작시도 낭독했다. 그런데 어떤 어른이 어느 틈에 곁으로 오시더니 “자네들은 학생들인데 술을 마시는가?”라고 물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 “네, 저희들은 수성고 문학동인회 야생초 동인들인데, 오늘 밤 목련 꽃이 화사해 한잔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도 우리들이 불량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허허 웃으시더니 “문학하는 친구들이구먼. 그래도 조금씩만 마시고 일찍 집에 들어가”라며 그냥 발걸음을 옮기셨다. 그 어른은 송록원의 주인이었다. 영복여중·고 학교재단 송영복 이사장님.

지금도 목련꽃이 피면 그 분 생각이 난다. 부자였으면서도 검소했던 옷차림이며 문학하던 소년들의 일탈을 이해해 주시던 너그러운 표정이 생각난다.

내가 좋아하는 봄꽃 중에는 매화, 목련꽃과 함께 라일락꽃이 상위를 차지한다. 우리 이름으로는 ‘수수꽃다리’인데 참 예쁘고 정겹다. 라일락이란 이름도 감성적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조 수다스러운 입들이

껌처럼 자꾸 씹어내는
자잘한 얘기들로 해서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구나

햇빛 참 좋은 날의 골목 안
최씨네 양철 담장 곁
쓰레기통에

꼬마들이 던져 넣고 간
라일락 꽃가지.        
-졸시 ‘4월’ 전문

스무 살 무렵 군대 가기 전 쓴 시다. 당시 매산동엔 동창생 최영선과 이기영이 살았다. 모두 고등학교 시절 문학을 한답시고 세상 고민을 다 끌어안은 찡그린 표정으로 살아가던, 송록원에서 술을 마시던 그 친구들이다.

그들과 안주 없는 낮술을 한잔하고 흥얼흥얼 걷던 골목길, 여자아이들이 갖고 놀다 쓰레기통에 버린 라일락꽃이 눈에 띄었다. 그 때 떠 오른 시상을 정리한 것이 위의 시 ‘4월’이다.

그리고 봄만 되면 어김없이 내 책상 위 물 컵엔 라일락 꽃 한 가지가 꽂힌다. 아, 지금 내 책상위에 있는 라일락 작은 가지에서도 꽃 몽우리가 맺히고 있다. 조것들 올핸 또 무슨 수다를 쏟아낼 것인가.

요즘 내 관심은 온통 수원시의 오래된 나무에 꽂혀있다. 어딜 가든 나무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팔달산을 걸으며, 수원화성을 산책하면서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무밖에 없다.

나하고 함께 수차례 나무 구경을 나섰던 수원문화원 최중영 사무국장과 직원들도 온통 나무만 보인다고 말해서 같이 웃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는 나무와의 사랑에 빠졌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후기 문장가인 저암 유한준 선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예전과 같지 않은 눈으로 나무를 보기 시작했다.

수원시가 지정한 오래된 나무들을 걸어가서 모두 만났다. 지정되거나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생태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나무들도 모두 사진으로 기록했다.

참으로 놀랍다. 그 과정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오래된 뽕나무도 만났고, 밤나무도, 모두가 믿지 않을 만한 라일락 거목도 발견했다. 늘 산책하던 성벽 안팎이었다.

오래된 라일락 나무를 바라보며 보존방법을 토론하고 있는 수원문화원 염상덕 원장(사진 오른쪽)과 최중영 사무국장, 직원들. 염 원장과 최 사무국장 사이에 있는 라일락은 밑둥 둘레가 1m20cm나 된다.(사진=필자 김우영)
오래된 라일락 나무를 바라보며 보존방법을 토론하고 있는 수원문화원 염상덕 원장(사진 오른쪽)과 최중영 사무국장, 직원들. 염 원장과 최 사무국장 사이에 있는 라일락은 밑둥 둘레가 1m20cm나 된다.(사진=필자 김우영)

라일락은 ‘수수꽃다리’라고도 부르는데 잘 알려진 고목은 대구시 소재 한옥카페 ‘라일락 뜨락 1956’에 있는 200년 정도 된 라일락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선생 생가 옆집을 개량한 이 카페에 있는 라일락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서울 봉은사 법왕루 서쪽 종루 앞에 있는 라일락도 고목으로 보호되고 있다.

그런데 수원에 있는 라일락도 만만치 않다.

최근 사진가 이용창 선생과 함께 3그루를 발견했는데 그중 한그루의 나무 밑둥 둘레가 자그마치 1m가 넘는다.

라일락 고목(古木) 중 한 그루.(사진=수원문화원)
라일락 고목(古木) 중 한 그루.(사진=수원문화원)

어째서 이 오래된 나무를 보지 못했던 것일까? 그동안 화성만 바라보고 다녔다. 화성 성 밖의 억새꽃 장관만 사진에 담았다. 라일락 옆의 활짝 핀 목련꽃에만 찬사를 보냈다.

우리는 청맹(靑盲)이었다.

이 나무가 오래도록 보존되면 좋겠는데 현재 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 언제 해를 당할지 모른다. 하루라도 빨리 보존대책을 세웠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