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사업소 출범 현판식.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화성사업소 출범 현판식.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화성의 세계유산등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 작업은 심재덕 수원문화원장을 필두로 화성행궁 복원사업을 시민운동으로 전개하면서 시작됐다. 각계각층의 대표들로 구성된 화성행궁복원 추진위원회의 활동은 범시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시민운동으로 응축된 힘은 훗날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결과물로도 나타났다. 화성의 세계유산등재로 인해 수원시가 화성에 매진할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진 것이다.

화성 세계유산 등재 인증서. (사진=화성사업소)
화성 세계유산 등재 인증서. (사진=화성사업소)

그러나 당시 수원시의회는 심재덕 시장이 화성에 전념하는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이유는 화성복원정비사업에 과다하게 예산이 투자돼 지역 주민숙원사업에 쓰일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화성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도 바뀌었다.

당시 문화재 관련 업무는 문화관광과 문화재계에서 담당했다. 그런데 화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 심재덕 수원시장은 화성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추진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해야 할일은 화성주변을 정비할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화성주변 정비계획 수립은 도시계획과에서 담당하도록 지시가 내려졌다. 1999년 화성주변정비계획이 수립됐다. 2000년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 성곽 밖의 불량한 주거지가 정비대상이었다. 이곳에 주차장을 조성하는 사업에 국비가 지원됐다.

장안문밖 정비 및 주차장조성사업 조감도. (사진=화성사업소)
장안문밖 정비 및 주차장조성사업 조감도. (사진=화성사업소)

당시 문화관광과 문화재계에는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 외에 건축직 1명과 학예연구사 1명이 화성행궁 복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 문화관광과장은 이 업무를 화성주변정비계획을 수립한 도시계획과에서 맡아줄 것을 바라고 있었다.

나는 이미 화성이 세계유산등재 되던 날부터 관심이 생겨 화성 주변을 답사했었다. 동료들과 화성을 정기적으로 답사한 것이 화성사랑모임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이어 2000년 5월 사단법인 화성연구회가 탄생될 즈음 화성업무는 소리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장안문 밖 주차장 조성사업은 내가 화성사업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화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수원시 각 부서는 경쟁적으로 다양한 사업을 집행했다. 문제는 각 부서별로 사업을 추진하다보니 상호 연계성이 부족한 것은 물론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에서 검토되고 추진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문제점을 종합해 심재덕 시장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심 시장은 “나도 이런 현상은 생각하지 못했다”며 인사와 조직을 담당하는 부서장을 불러 화성업무를 통합하라고 지시했다.

화성행궁 1단계 완공전 모습.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화성행궁 1단계 완공전 모습.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2001년에 이르자 화성행궁 복원사업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성행궁이 복원되면 화성행궁을 관리할 인력과 부서가 필요했다. 조직관리부서는 담당부서의 의견을 들어 화성관리사무소를 화성사업소로 확대 개편하는 안을 만들어 경기도를 경유, 행정안전부에 조직 개편계획 승인을 신청했다.

그런데 경기도는 ‘확대개편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첨부해 행안부에 올렸다. 행안부는 우선적으로 행궁을 관리하는 1개 계만 늘리는 것을 승인해주었다. 이렇게 되자 수원시 조직관리 부서는 심도있게 자료를 만들고 보완하여 재차 조직 개편 안을 승인신청하게 된다.

당시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경기도에 공문을 발송하고 설명을 하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경기도에서 반려공문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수원시와 경기도는 여러 가지 사안으로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던 시절이었다.

심재덕 시장과 임창열 지사의 불편한 관계가 조직개편안 반려로 이어진 것이다. 2002년 6월 13일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임창열 도지사는 당시 불미한 사건으로 출마하지 못했다. 심재덕 시장도 김용서 당시 수원시 의회의장에게 패해 낙선했다.

2002년 7월 1일 김용서 시장이 민선3기 수원시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경기도지사와 수원시장이 바뀌자 분위기가 개선되기 시작했다. 나는 화성사업소의 확대 개편 안을 어떤 방법으로 추진해야 성사가 될까 골똘히 생각했다. 방법은 투트랙 전법을 쓰기로 작전을 세웠다. 조직관리부서는 행정라인을 담당하기로 하고 나는 측면지원을 하기로 했다.

하루는 지인으로 부터 행안부 자치제도과장에게 취지를 설명했으니 올라가서 설명하라는 말을 듣고 행안부를 찾아갔다. “100% 공감한다”는 말을 듣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수원에 내려왔다. 그 때가 2002년 10월경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그해 12월19일에는 16대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그해 연말은 선거로 인해 화성사업소확대 개편안이 지연되고 있었다.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2003년이 되었는데 화성연구회 김이환 이사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내가 어제 이근식 행정안전부장관을 만나 뵙고 말씀을 드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성사업소 확대 개편 안이 승인됐다. 기존 화성관리사무소는 사무관 1명, 6급 2명, 7급 2명, 기타 4명에 불과했다. 새로이 출범하는 화성사업소는 소장 4급 1명, 관리과 및 시설과로 편제됐다. 과장 5급 2명, 팀장 6급 7명, 학예사 6급 1명, 주사보 7급 7명, 서기 8급 6명, 서기보 9급 2명, 관리직 23명이었다.

이외에 현장실무 담당자 26명 등 총인원이 49명으로 확정됐다. 화성과 관련한 업무 전반을 추진하는 기관으로 출범하게 된 것이다. 당시 화성사업소는 화성에서 진행되는 복원정비사업과 팔달산 관리, 문화예술공연 등 화성의 전반을 담당하는 부서로서 세계유산 화성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고 관리하는 조직이었다.

수원시는 화성사업소 출범 준비에 들어갔다. 사업소 건물은 행궁 바로 앞 왼쪽건물 2층과 3층을 임대해서 사무실을 만드는 준비를 했다. 이윽고 화성사업소 개소식 날짜가 나왔다. 화성사업소 개소식은 2003년 6월 10일로 확정됐다.

현재 화성사업소 이전 현판식.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현재의 화성사업소 이전 현판식.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나는 내심 화성사업소장이 되면 어떤 일을 할까 생각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6월3~4일쯤으로 기억난다. 어떤 사람이 내게 전화를 했다. 화성사업소장은 여러모로 보아 당신이 돼야하는데 이번은 양보 좀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6월 10일이 임박해 시장이 찾는다는 것이다.

올라가보니 예측한대로 “이번 화성사업소장은 네가 양보를 하라”는 것이다. 다음 자리가 있으면 0번으로 해주겠다고 했다. 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시청도시계획과장에서 화성사업소 시설과장으로 하급기관 과장자리로 옮기게 됐다. 그러나 내게 전화한 사람이 화성사업소장으로 오지는 않았다.

화성사업소장 진급은 우여곡절 끝에 2005년 10월에나 할 수 있었다. 어찌됐거나 나는 화성과 함께 행복하게 지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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