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평 거송 숲길 그림 68×48cm. (사진=수원시)
대유평 거송 숲길 그림 68×48cm. (사진=수원시)

역사 이래 수원을 빛낸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나는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간 평범한 소시민 윤한흠(尹漢欽) 선생을 특별히 기억하고 싶다.

윤한흠 선생과 나와의 인연은 1999년 어느 봄날 비롯됐다. 당시 수원시의회 양종천 의원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화성복원정비 사업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양 의원은 수원의 옛 모습을 그려 놓은 분이 계시다고 말했다. 이 때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양 의원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선생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 의원은 수원에 올라와 6~7년 동안 농촌진흥청과 서울농대 등에 시험기자재 납품업을 하다가 잠시 쉴 무렵 지인의 소개로 윤한흠 선생을 만났다고 한다.

현재 종각 맞은편 후생한의원. 옛 화홍예식장. (사진=김충영 필자)
현재 종각 맞은편 후생한의원. 옛 화홍예식장. (사진=김충영 필자)

당시 윤한흠 선생은 지금의 여민각 북쪽 후생한의원 자리에 종로종합상가를 건립하고 있었다. 건축이 완료된 후 선생의 아들인 윤해종씨가 사장을 했고 2년여 함께 근무했다고 한다. 그래서 윤한흠 선생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윤한흠 선생 댁은 장안문 부근 농협아래(현재 전통문화관 주차장)에 있었다. 윤 선생을 만나러 도시계획과 최호운 박사(현 사단법인 화성연구회 이사장), 김인석 주무관, 이용창 수원시 사진담당과 함께 갔다.
집에 들어서니 이런저런 자료를 갖고 나오셨다. 그리고 건넌방을 가득 채운 수원 옛 그림을 보여주셨다.

장판지를 표지로 해 직접 만든 그림첩 앨범을 보여 주셨다. 앨범에는 '1972년'이라고 적혀있는 24점에 대한 연필화가 끼워져 있었다. 사진 앨범과 화성학원졸업장, 종근당 사내보에 게재한 수원 옛 그림기사 등도 볼 수 있었다.

선생은 1923년 수원군 남창리에서 태어나 수원소재 화성학원(수원중․고등학교 전신 6년제 소학교)을 졸업했다. 손재주와 기억력이 좋았다고 했다. 화가 수업을 받지 않았음에도 소학교시절 학급게시판에 그림이 게시되곤 했다고 한다. 

소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일본 니이카타현 산죠시에 있는 공장에 취직해서 기계설계를 하면서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그림을 익혔다고 한다. 이후 1945년 해방이 되자 귀국해서는 수원역 앞에서 양화점을 경영하기도 했고, 영동시장에서 청미당 국숫집과 식품점 천덕상회를 경영했다. 이 때에도 연필과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 무렵 윤한흠 선생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 홍사악(전 서울대 약대 교수, 1989년 작고)으로부터 “당신은 기억력도 좋고 손재주도 좋으니 수원의 옛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옛 지적도와 ‘화성성역의궤’의 ‘화성전도’를 기본으로 삼아 그림을 그렸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성내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고증을 구했다고 한다.

그림을 고증해주신 고마운 분들. 왼쪽부터 정원경 옹, 최종운 옹, 나성균 옹, 이춘근 옹. (사진=김충영 필자)
그림을 고증해주신 고마운 분들. 왼쪽부터 정원경 옹, 최종운 옹, 나성균 옹, 이춘근 옹. (사진=김충영 필자)

그 중에서도 이춘근(李春根, 1891년생, 유년시절 장안동 거주), 나성균(羅成均, 1896년생, 유년시절 신풍동 거주), 최종운(崔鍾云, 1899년생, 유년시절 남수동 거주), 정원경(鄭元景,1904년생, 유년시절 시구문 밖 거주)등 네 분은 기억력도 뛰어났음은 물론 세밀한 부분까지 고증을 해주었다고 한다.

선생은 원로들이 고증해준 부분을 그려서 가지고가면 다시 고증해주기를 수차례 반복해 1972년부터 10여년 동안 24점의 그림을 완성했다. 처음의 그림은 연필화로 그렸다. 그 무렵 선생은 종로교회 옆(현 후생한의원)에 건물을 지어 종로 종합상가를 운영했다.

이후 종로 종합상가를 그만두고 건물을 개축해 화홍예식장을 열었다. 이때 수원 옛 그림을 칼라로 다시 크게 그려 예식장에 24점을 걸었다고 한다. 이후 화홍예식장 건물을 매각한 뒤에는 그림을 집에 가져다가 보관했다.

윤한흠선생 댁에서 고증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인석 주무관, 초호운 박사, 필자, 윤한흠 선생. (사진=김충영 필자)
윤한흠선생 댁에서 고증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인석 주무관, 최호운 박사, 필자, 윤한흠 선생.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나를 만날 당시 선생은 연세가 76세이고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림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모교인 수원중고등학교에 기증하려고 학교법인 이사장에게 전화를 했으나 외국에 나가있어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한흠 선생. (사진= 이용창 사진작가)
윤한흠 선생. (사진= 이용창 사진작가)

이런 시기에 나를 만난 것이다. 선생께 그림을 수원시에 기증하시라고 말씀드리니 기꺼이 그러겠다고 하셨다. 며칠 지나 차를 가지고 가서 그림과 자료 일체를 인수해오게 됐다.

1999년 12월 29일 수원미술전시관이 문을 열게 됐다. 당시 개관준비를 수원시청 문화관광과에서 했다. 당시 학예연구사인 이달호 박사가 찾아와서 수원미술전시관 개관기념전으로 윤한흠 선생 그림전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기에 동의했다. 그리고 바로 도록 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그림 설명문 작성은 이달호 박사가 담당했다. 도록 제작은 옛 그림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구상했다. 현재 위치의 사진 촬영은 이용창 수원시 사진담당이 했다. ‘되살아난 수원의 옛모습 그림전’은 1999년 12월 29일 만석거에 위치한 수원미술전시관에서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심재덕시장이 윤한흠 선생께 감사패를 드렸다.

수원미술관 개관기념 전시회 도록. (사진= 필자 김충영)
수원미술관 개관기념 전시회 도록. (사진= 김충영 필자)

그림을 소개하면 장안문그림, 동북공심돈, 장안문 밖 마을과 비각, 화성문주변, 수성중학교 주변과 비석거리, 영화정과 만석거, 동장대와 동창뿌리, 종로, 중동사거리, 대황교, 구천동 비석거리, 윗버드내 송덕비거리, 매향교, 봉돈, 화서동 서낭당, 세류동 서낭당, 방화수류정과 북암문, 화홍문과 육지송, 팔달문을 중심으로한 남성, 대유평 거송숲길, 창룡문주변, 거북산,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등 23점이다.

선생의 그림전시회는 수원미술전시관 개관기념전에 이어 2012년 2월 23일부터는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용을 품은 도시, 수원화성 윤한흠 옛 수원화성 그림전'이란 기획전시회를 열었다.

이후 윤한흠 선생은 2002년 평생 모은돈 5억원을 모교인 수원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기증하기도 했다. 수원고등학교는 2015년 신년인사회에서 윤한흠 선생을 자랑스런 동문으로 선포하고 흉상헌정식을 가졌다.

윤한흠 선생은 2016년 8월 22일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선생은 수원토박이로 태어나 수원을 지극히 사랑한 수원의 향토화가로 수원의 모습을 후대에 남기고자 노력한 자랑스런 수원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팔달문을 중심으로 한 남성 그림. (사진=수원시)
팔달문을 중심으로 한 남성 그림. (사진=수원시)
복원된 남수문. (사진= 김충영 필자)
복원된 남수문. (사진= 김충영 필자)

현재 수원시는 화성의 미복원 구간인 팔달문 주변을 복원하기 위한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선생의 그림은 화성남쪽구간의 미복원시설인 남동적대, 남서적대, 남암문, 남공심돈과 성벽을 복원하는데 아주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윤한흠 선생의 그림 23점은 ‘그림’이 아니고 ‘사진’이라고 말하고 싶다. 상상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인이 본 모습과 원로들이 본 모습을 수차례의 고증절차를 거쳐 수정했기 때문이다.
23점의 그림중 대부분은 없어진 풍경을 그려서 옛 모습을 전해주는 내용이다. 이들 그림 중 종로, 매향교, 남수문 그림은 이미 복원에 활용되기도 했다. 방화수류정 앞의 육지송은 복원이 가능하다 할 것이다.

매향교 그림. (사진=수원시)
매향교 그림. (사진=수원시)
방화수류정 앞에 있던 6지송 그림. (사진=수원시)
방화수류정 앞에 있던 6지송 그림. (사진=수원시)

지금도 수원의 다양한 분야에서 윤한흠선생의 그림이 활용되고 있다.
현재 화성행궁복원을 추진하는 옛 신풍초등학교 울타리에 선생의 그림이 상설 전시돼 있다.

옛 신풍초등학교 울타리에 전시된 윤한흠선생 그림. (사진=김충영 필자)
옛 신풍초등학교 울타리에 전시된 윤한흠선생 그림. (사진=김충영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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