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화성’에 제대로 미친 사람 '최호운' (사)화성연구회 이사장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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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광교칼럼] ‘화성’에 제대로 미친 사람 '최호운' (사)화성연구회 이사장되다
  • 김우영 논설위원
  • 승인 2021.04.0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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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논설위원 / 시인
화성행궁 앞에 선 최호운 (사)화성연구회 신임 이사장. (사진=김우영 필자)
화성행궁 앞에 선 최호운 (사)화성연구회 신임 이사장. (사진=김우영 필자)

지난달 27일 사단법인 화성연구회 2021년 정기총회가 열렸다. 코로나19로 한 번도 모이지 못했던 관계로 회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이날 모임은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진행됐다. 행사장은 사전 소독을 마쳤고 입구에서 발열 측정을 하고 손 소독을 했으며, 한 좌석 띄어 앉기를 유지했다.

물을 비롯한 음식물은 일체 반입을 금지시켰고, 모임이 끝난 후 화성연구회의 전통이던 회식도 하지 않고 그냥 산회했다. 회원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어쩌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서로를 위로하며 헤어졌다. 잠시였지만 얼굴 본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번 정기총회에 회원들의 관심이 더욱 깊었던 것은 9대 이사장을 선출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만장일치로 최호운 박사가 이사장으로 추대됨으로써 앞으로 2년간 화성연구회를 앞에서 끌게 됐다. ‘전임’이 된 김충영 박사는 최 이사장에게 1주일 간 본인이 직접 새긴 느티나무 명패를 전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 회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김충영 전 이사장(왼쪽)이 최호운 신임 이사장에게 직접 만든 명패를 전달하고 있다.(사진=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김충영 전 이사장(왼쪽)이 최호운 신임 이사장에게 직접 만든 명패를 전달하고 있다.(사진=이용창 (사)화성연구회 이사)

사단법인 화성연구회는 ‘화성에 미친 사람’들이 모인 단체다. 모두 좋아서 스스로 참여하는 일이고 보니 어느 단체보다 사람들의 관계가 따듯하고 끈끈하다. 구성원도 다양한데 역사학자, 언론인, 교수, 교사, 관련 공직자, 고건축을 포함한 건축전문가, 정조시대 무예연구가 등 전문가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있다.

이들 가운데 누가 더 깊이 화성에 빠졌는가 판단할 수는 없지만 화성연구회의 주춧돌을 놓은 최호운 현 이사장과 김충영 전 이사장을 빼놓을 수는 없다.

화성연구회 창립에 관한 이야기는 본보에 ‘수원 현미경’을 연재하는 김충영 전 화성연구회 이사장의 이야기를 듣는 게 낫겠다.

“1997년 12월 4일 오후, 수원시청 청내 방송에서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심의 통과됐다는 방송이 나왔다. 다음날 단단히 마음을 먹고 화성 성곽을 안으로 한 바퀴 돌아보았다. 과연 이런 모습으로 국내외 관광객을 맞을 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함께 근무하는 도로보수 담당 이재관 계장과 도시계획 담당 최호운씨 등 세 사람이 매주 토요일 성곽을 답사하다가 화성에 관심이 많은 여러 분야 사람들을 합류시켜 정기적인 답사를 진행하게 됐다. 당시 ‘늘푸른 수원’ 김우영 편집주간, 이용창 사진작가, 학예연구사 이달호 박사, 역사학자 김준혁·한동민 박사 등 전문가 들이 합류하면서 반년이 안 되어서 20여 명으로 늘어났다. 최호운씨가 총무 역할을 담당했는데 뒷날 ‘화성을 사랑하는 모임’(화사모)이라는 명칭으로 활동하게 됐다. 1999년에는 회원이 30여 명이 넘어서자 내친김에 사단법인 등록을 추진하자는 의견이 모이면서 1년여 준비 끝에 2000년 7월 21일 발기인 총회를 거쳐 2001년 5월 21일 '사단법인 화성 연구회'가 출범했다.”

김 전 이사장의 글에도 등장하지만 화성연구회의 중추에는 최호운 이사장이 있다. 어찌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 우리는 그를 ‘최 이장’이라고 불렀다.

그는 가천대학교 대학원에서 주경야독으로 도시계획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받은 억척스런 인물이다.

1983년 12월 수원시청에 들어와 2018년 6월 ‘시설서기관’으로 퇴직할 때까지 정말 헌신적으로 일했다. 지금 대표 이사를 맡고 있는 회사에서도 그렇지만 그는 ‘대충’이란 말을 모른다. 그 바람에 고집스런 면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그는 대단히 합리적이고 넘칠 정도로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무보수로 화성연구회 사무국장을 하고 있을 때 많은 이들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전성기였다.

그의 ‘화성사랑’은 잠시도 멈춘 적이 없었지만 한때 화성연구회에서 모습을 볼 수 없어 많은 이들이 서운해 했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나중에 본인의 의사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다시 돌아온 그는 기꺼이 수석 부이사장을 맡았고 화성연구회는 예전의 열정으로 뜨거워졌다.

그리고 지난달 원로들이 9대 이사장으로 추천했고 이사회에 이어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추대된 것이다.

1997년 12월 김충영 전 이사장과 최호운 현 이사장 등이 첫걸음을 시작한 화성연구회는 23년의 세월을 건너왔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해왔다. 대통령상도 받았다.

이제 사단법인 화성연구회 최호운 이사장의 시대가 열렸다. 20여 년 전의 그 열정이 다시 돌아올 것 같은 기대감, 가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