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흠선생의 종로그림. (사진=화성박물관)
윤한흠선생의 종로그림. (사진=화성박물관)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수원에 종로가 있다고 하면 서울 친구들은 수원에 무슨 종로가 있느냐고 비아냥댔다. 우리나라에서 종로 지명이 있는 곳은 서울과 강화도, 남한산성, 수원이다. 이 네 곳엔 종각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곳은 수도였거나 왕들이 피신을 해서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수원은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정조는 아들 순조가 15세가 되면 임금 자리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화성에 머물고자 했다. 그래서 화성은 한성과 같은 도성체계로 운영하기 위해 만든 종각이었다.

그러나 수원의 종각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1795년 윤2월 9일부터 행해진 혜경궁 회갑연에 관한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에 기록이 있을 뿐이다.

윤2월 10일 "대가(大駕)가 장안문으로 들어가 종가(鐘街) 좌우 군영 앞길과 신풍루, 좌익문을 지나 중양문으로 들어섰다."
 
또 혜경궁 회갑연에 참여한 이희평이 쓴 ‘화성일기’(華城日記)에서 "종루 십자가(十字街)에 시정이 문을 열고 앉은 모습이 서울종루와 같더라. 나가 거닐어 보니 시정여항(閭巷)의 번화함에 비할 데 없다." 라는 내용을 통해 화성에 종루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1795년에 이미 종각이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정확한 종각에 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1911년에 작성된 지적원도의 동남쪽 모퉁이에 작은 필지가 있음을 확인할 때 종각이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1년 지적도 동남쪽 모퉁이에 작은 필지가 종각자리, (사진=김충영 필자)
1911년 지적도 동남쪽 모퉁이에 작은 필지가 종각자리, (사진=김충영 필자)

종각에 대한 기록이 없어 위치와 규모 등은 확인이 어려우나 종로라는 거리 명칭과 옛 어른들의 증언에 의해 종로사거리 동남방 모퉁이 일대로 추정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고 윤한흠 선생이 그린 수원의 옛 모습 그림 중 '종로' 풍경화다.

선생의 종로 그림에는 정면 측면 1칸으로 된 종각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종로 사거리의 종각은 어느 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기록이 없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종각을 어떻게 관리했는지에 대해서도 기록이 없다. 다만 팔달문에 종이 걸려 있는데 이 종이 화성시 동탄에 있는 만의사 범종이라는 것만 알려진 진실이다.

종루를 그린 윤한흠 선생은 1970년대 초 수원의 옛 그림을 고증해준 원로들의 증언을 통해 팔달문의 범종은 종로사거리의 종이었다고 말씀해주셨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종각이 헐리게 되자 종을 팔달문에 가져다 걸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런 연유로 윤한흠 선생은 종로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팔달산의 효원의 종은 1991년 18대 수원시장으로 부임한 이호선 시장 때 만들었다. 이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지자체장을 선거로 뽑는 제도가 무르익어갈 무렵이었다. 이호선 시장은 관선시대가 끝나면 민선시장에 도전해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수원시장에 부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팔달문에서 타종하는 모습. (사진=수원박물관)
팔달문에서 타종하는 모습. (사진=수원박물관)

당시 수원에서는 제야의 종 타종행사는 하지 않았지만 수원시민의 날 행사를 화홍문화제(민선시대 화성문화제로 변경)와 겸해 개최했다. 화홍문화제 전야 행사를 팔달문루에서 타종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호선 시장은 이때 타종식을 팔달문에서 하게 됐다.

효원의종각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효원의종각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아마도 이때 종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호선 시장은 당시 새로운 사업을 많이 벌였다. 그 중 하나가 팔달산에 효원의 종각을 만든 것이다. 당시 마음이 급했던 것인지 수원에 엄연히 '종로'라는 지명과 구전으로 전해오는 종각자리가 있었음에도 팔달산에 효원의 종각을 설치했다.

지자체장을 선거로 뽑는 제도가 1995년 전격적으로 시행됐다. 민선1기 수원시장 후보로 이호선씨도 출마했다. 결과는 수원문화원장 출신 심재덕씨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당히 민선1기 수원시장이 됐다.

심재덕시장이 단행한 조치는 효원의 종을 일반 시민에게 타종할 수 있도록 개방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수원을 찾는 관광객 및 시민들은 타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효원의 종 타종 안내문. (사진=김충영 필자)
효원의 종 타종 안내문. (사진=김충영 필자)

시간이 지나 1999년 초, 윤한흠 선생의 수원 옛그림을 수원시가 인수해올 무렵인 1999년 12월29일 수원미술전시관이 새로이 문을 열었다. 개관기념전으로 윤한흠 선생의 수원 옛 그림전을 개최해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 회에 밝힌 바 있지만 윤선생과의 만남에 많은 분들이 다리를 놓아주셨다. 그 중에 이해왕 씨가 우만2동장(전 권선구청장)으로 근무할 때이다. 양종천 의원의 부탁을 받고 장안구 시민과 호적계에 부탁을 하여 윤한흠 선생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확인한 것이 윤 선생의 그림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계기가 됐다.

윤한흠 선생의 그림을 본 많은 시민들은 이때부터 종각의 복원을 기원했던 것같다.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시작된 화성주변정비계획은 1999년에 수립됐다. 2002년 6월 민선3기 시장에 김용서 시장이 당선됐다. 그해 12월에는 기존에 수립한 화성정비계획의 미비점을 보완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종각복원 계획도 반영됐다.

건물만 철거된 행궁광장에서 개최된 음식문화축제.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건물만 철거된 행궁광장에서 개최된 음식문화축제.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행궁광장 보상은 2004년부터 시작해 2005년 8월에 수원우체국을 제외하고 보상이 완료됐다. 2005년 화성문화제 음식문화축제장을 건물만 철거한 행궁 앞 광장부지에 설치했다.

당시 김용서 시장이 화성문화제 준비 현장을 찾았을 때 종로사거리 동남쪽 모퉁이를 가리키며 저기가 종각이 있던 자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광장이 만들어지면 타종행사를 광장에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건의했다. 그 해 새해를 맞는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팔달산 효원의 종각에서 있었다. 그 해 타종행사에는 시민들이 유난히 많이 참여했다.

효원의 종각에서의 제야행사 타종모습.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효원의 종각에서의 제야행사 타종모습. (사진=이용창 사진작가)

팔달산 효원의 종각은 옹색한 곳에 지어졌다. 그래서 몇 백 명만 모여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혼잡했다. 아마 이 때 김용서 시장은 종각을 종로사거리에 짓는 것을 결심한 듯 했다.

이후 김용서 시장이 화성행궁을 찾았을 때 나에게 종로 사거리에 종각을 만들자고 했다. 그러면서 예산은 김문수 도지사에게 부탁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경기도는 수원시에 많은 예산을 지원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2007년 2월 27일 김문수 도지사가 취임이후 처음으로 화성투어를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일행에게 화홍문앞 이주석(이무기)에 대해 설명하는 필자. (사진=경기데일리 박익희기자)
김문수 경기도지사 일행에게 화홍문앞 이주석(이무기)에 대해 설명하는 필자. (사진=경기데일리 박익희기자)

당시 김용서 시장은 재선이었고 김문수 도지사는 초선이었다. 도지사가 된지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수원화성에 관심이 생긴 것이다. 경기도지사가 화성투어를 한다고 하자 경기도 간부공무원과 경기도 도의원, 국회의원, 시의원, 김용서 시장 등 50명 정도가 함께했다.

안내는 화성사업소장인 내가 맡았다. 보충설명은 함께 근무한 김태한 학예사가 도왔다. 이때 나는 수원시가 추진하는 화성복원정비사업을 설명했다. 중·단기 사업계획으로 약3000억원이 들어가야 하는데 국·도비 지원이 부족해서 사업추진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화성투어 후 일행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경기데일리 박익희기자)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화성투어 후 일행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경기데일리 박익희기자)

당시 화성사업의 예산은 수원시 80%, 국비 15%, 도비 5%쯤 부담하고 있었다. 화성사업 중 현안사업은 광장조성과 종각복원사업임을 강조했다. 김용서 시장은 김문수 도지사에게 "종각을 복원하는데 100억 원이 소요되는데 종각을 지사님 재임기간에 지어 수원시민들에게 선물해달라"고 건의했다.
 
김 시장은 그 자리에서 “지사님께 우리의 건의를 받아주시도록 큰 박수를 쳐드리자”고 해 박수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김 지사는 그 자리에서 적극 검토해보겠다고 대답을 했으나 가서는 답이 없었다. 이후 도지사가 행궁에 올 때마다 김 시장은 시민들에게 “도지사님께서 종로사거리에 종각을 선물해 주실 수 있도록 박수를 보내드리자”며 시민들의 박수를 이끌어내곤 했다.

중건된 여민각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중건된 여민각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결국 김문수 지사는 100억원이 들어가는 종각건립비로 65억원을 지원해줬다. 수원시가 35억원을 부담해 종각을 짓고 2008년 10월 8일 화성문화제 전야행사로 타종식을 함으로써 여민각은 수원의 새 명물로 탄생했다.

여민각을 만든 뒷얘기는 다음 호에 계속된다. /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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