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맘때쯤이면 몸통만한 머리부분에 가득찬 알을 이고 다니는 놈이 ‘주꾸미’다. 어민들은 이런 알의 모양새가 꼭 흰 사기 주발에 이밥을 가득 담아놓은 형국이라 해서 ‘주꾸미쌀밥’이라 불렀다. 

 그리고 먹고살기 힘든 시절, 특히 보릿고개가 존재했던 6-70년대 이런 주꾸미는 해안가 어민들에게 일등 효자 먹거리 구실을 했다. 쌀밥을 연상하며 무치고, 삶고, 볶고, 구워서 먹고. 배고픔을 달랬으니 당시 이보다 더한 구황식품이 있었겠는가.

 식도락가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민에세 사랑받는 계절음식이 된지 오래인 주꾸미. 유명세 만큼이나 불리는 이름 또한 다양하다. 보통 ‘쭈꾸미’라고들 많이 부르지만 표준어는 ‘주꾸미’다.

 한자어로는 구부린다는 뜻의 ‘준(蹲)’자를 써서 준어(蹲魚), 속명은 죽금어(竹今魚)라고 한다. 죽순이 한창 자라나는 봄철이 제철이라 생긴 이름이다. 이밖에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어명고(魚名攷)라는 표기도 있고 한자의 또다른 이름 망조어(望潮魚)도 있다.

  죽금어의 한글명칭 ‘쥭근이’도 있다. 뿐만아니다. 비록 사투리지만 전라남도와 충청남도에서는 쭈깨미, 경상남도에서는 쭈게미, 그 외에 지역에서 쭈꾸미, 쭉지미,죽거미, 쯔그미 등으로도 불린다.

 주꾸미는 사람을 닮은 것도 아닌데 유난히 자기 집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직접 집을 짓지는 않지만 밀폐 공간을 자신의 집으로 알고 거처로 삼는 묘한 습성이 그것이다.

 그래서 주꾸미를 잡을 때 이를 적절히 이용한다. 고둥 소라 전복 등의 껍데기를 몇 개씩 줄에 묶어서 바다 밑에 가라앉혀 놓으면 밤에 활동하던 주꾸미가 이 속에 들어가 있어서 그냥 건지면 되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주꾸미의 이 같은 습성이 전국민의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주꾸미 집으로 변한 고려청자가 통발에 걸려서 였다.

 그후 발굴을 시작, 수천 점의 고려청자가 800년 만에 햇빛을 봤다. 고려청자는 당시 강진에서 구워 개경으로 운반하던 도중 침몰한 선박에 실려 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주꾸미의 묘한 습성이 잠자던 보물을 깨운 셈이 됐다.

‘바다의 원기 회복제’로 별칭도 남다르다. 특히 요즘 같은 제철에는 낙지보다 값도 비싸고 더 대접을 받는 건강 식재료로 인기가 높다.

  별칭이 붙은 이유는 이렇다. 씹으면 톡톡 터지는 고소, 쫀득쫀득한 감칠맛도 맛이지만, 영양 때문이다.

 지방이 적고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좋다. 특히 단백질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단백질을 구성하는 이소루신, 루신, 라이신, 메티오닌, 페닐알라닌, 트레오닌, 트립토판, 발린 등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먹물에는 항종양활성 성분인 일렉신과 같은 뮤코 다당류가 포함돼 있어 항암효과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꾸미 제철이 지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서.남해안 산지 뿐 만이 아니라 도심 곳곳 식당가에서도 주꾸미를 재료로 한 별미 메뉴가 넘쳐나 입맛 잃기 쉬운 계절 침샘을 자극하지만 지인, 동료들과 쉽게 다가가지 못하니 아쉽다.

 특히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러 주꾸미 산지로 달려 가려해도 점점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가 발목을 잡고,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 등의 소식이 마음을 심란케 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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