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세 되던 해 청계천 빈민촌에 들어가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1971년입니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몹시 가난하였습니다. 빈민촌에는 굶는 가정들이 즐비하였고 집집마다 환자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지금 같은 의료보험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치료를 받지 못하여 병원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의 장례가 문제였습니다.

다행히 벽제에 서울시립 화장터가 있어 5천원 비용으로 화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장하고서 재 봉지를 받아 나와서는 어딘가에 묻어야 합니다.

그러나 묻을 곳이 없는 처지인지라 재 봉지를 들고는 사자의 가족들과 함께 한강다리로 갔습니다.

한강 다리 난간에 서서 한강물에 재를 뿌리며 말했습니다.

"흐르는 한강물 따라 하늘나라까지 가세요. 거기서 터를 잡고 기다려 주세요. 언젠가 거기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시절 죽은 후에 묻힐 곳이 없는 설움을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동두천 산속 깊숙이 두레마을을 세운 후 숲 한켠에 수목장 구역을 세워 묻힐 곳이 마땅치 않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제도 외국에서 과로로 쓰러져 식물인간으로 귀국한 후 죽은 분이 있어 묻히게 하였습니다.

가족 중 한 분이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비용을 묻기에 일러 주었습니다.

"비용 마음 쓰지 마시고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골라 그 나무 기슭에 묻으세요. 외국에서 고생하다 오셨다는데 고국에서 편안히 쉰다는 마음으로 쉬게 하세요."

죽은 후에도 장례 비용을 염려하여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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