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초 수원문화원에서 연락이 왔다. 수원의 나무 역사를 담은 책을 만드는데 집필을 맡아달라는 것이다. 나를 포함, 정조시대 나무 전문가, 수원화성 역사 전문가, 향토사진 전문가가 필진에 포함됐다.

이야기를 들으니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수원시의회 김영택 시의원(광교1·2동, 제11대 수원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이 어렵사리 예산을 확보해 이 일이 성사된 모양이다.

올해 수원시 예산안 총 규모는 2020년보다 1650억원 줄어든 2조6612억원이다. 지방세 추계액은 2020년 마무리 추경(9200억원 대비) 250억원이 감소한 8950억원이다. 이처럼 예산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에서 불급(不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나무와 관련된 책 발간비를 확보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이 노력으로 인해서 잊혀졌던, 또는 고사위기에 처한 수원의 오래된 나무들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22일 수원일보에 쓴 ‘청맹(靑盲)이여, 어찌 이 오랜 라일락을 못 봤던 것일까?’라는 칼럼에도 밝혔지만 그날 이후 내 관심은 온통 수원시의 오래된 나무에 꽂혔다. 어딜 가든 나무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무와의 사랑에 빠졌다. 나하고 함께 나무를 만나러 다녔던 수원문화원 최중영 사무국장과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조선후기 문장가인 저암 유한준 선생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했다. 우리의 눈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사진가 이용창 씨와 함께 수원시가 지정한 보호수와 노거수(老巨樹)들을 만났다. 북쪽으로는 노송지대, 서쪽으로는 호매실동 노송, 동쪽으로는 영통 청명중학교 옆 느티나무, 남쪽으로는 권선동 은행나무...차를 타지 않고 모두 걸어서 수차례 답사했다. 그래야 그 지역이 보이고 그 나무가 보이기 때문이다. 지역민들의 삶과 나무와의 관계를 살펴보려면 걸어서 답사하는 것이 옳다.

이 과정에서 큰 소득이 있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또는 모르고 지나쳤던 오래된 나무들을 발견한 것이다. 100년 정도 되는 라일락 십 수 그루, 거대한 귀룽나무와 계수나무, 200년은 넘어 보이는 뽕나무, 150년 이상 살았다는 팽나무들도 확인했다.

그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거대한 뽕나무와의 만남이었다. 이 나무는 화성 서북각루 안쪽, 팔달산 회주도로 20m 아래에 두 그루가 있다.

지난 겨울 처음 찾아갔을 당시의 뽕나무 중 한그루. 나무 옆에 선 김충영 박사와 이용창 사진가와 비교해 보면 얼마나 거대한 나무인가를 알 수 있다. (사진=김우영 필자 )
지난 겨울 처음 찾아갔을 당시의 뽕나무 중 한그루. 나무 옆에 선 김충영 박사와 이용창 사진가와 비교해 보면 얼마나 거대한 나무인가를 알 수 있다. (사진=김우영 필자 )

수원문화원에서 열린 관계자 회의 도중에 김준혁 한신대 교수가 이 뽕나무의 존재를 언급했다. (사)화성연구회 회원들과 답사도중 김충영 박사가 뽕나무를 알려줬다는 것이다.

분명히 나도 그 자리에 있었을 터,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관심분야가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회의가 끝나자 곧바로 김 교수가 말한 장소로 갔다. 2월초 눈이 수북하게 쌓인 숲길을 헤맸지만 뽕나무라고 여겨지는 나무는 발견하지 못했다. 터덜터덜 걸어서 내려와 신풍동 단골 대폿집으로 들어가 추위엔 언 몸을 녹였다. 그리고 김충영 박사에게 전화를 해 뽕나무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더니 한걸음에 달려 나왔다.

노을이 아름다운 저녁, 그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이게 그 뽕나무예요” 입이 떡 벌어졌다. 무슨 뽕나무가 이렇게 큰가.

늘 산책하던 길이었다. 두 그루가 있는데 성벽에 가까운 뽕나무는 아래에 있던 것을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 옆에 큰 느티나무가 있어 생장에 방해가 될까봐 옮겼노라고 김박사는 증언했다. 당시 김박사는 화성을 관리하는 부서의 현직에 있었다.

어렸을 때 마을 근처에 뽕나무 밭이 있었다. 잠업을 장려하던 시절이었다. 오디를 따먹느라 기어 올라가 놀던 기억 속의 뽕나무는 기껏해야 어른 키 두 배 정도였는데 이 나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했다.

술기운도 조금 작용했을 것이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거대한 뽕나무를 본 것이 처음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 사람의 손을 많이 탔을 텐데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 김우영 논설위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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