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와 화성시가 있다. 1949년 8월 13일까지 수원과 화성은 수원군이란 하나의 행정지역이었다. 수원읍이 8월 14일 단 하루 동안의 부(府)시기를 거쳐 15일 시로 승격되고 화성군이 분리되기 전까지는 한 몸이었던 것이다.

팔달문과 지동시장 사이에 있던 수원읍사무소는 수원시청이 됐고, 화성행궁 길 건너 종로 후생한의원 자리에 있던 수원군청은 화성군청으로 바뀌었다. 세월이 흘러 수원시청은 교동에 자리 잡았다가 인계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화성군청도 얼마 후 오산으로 이전했다가 지금은 남양으로 옮겼는데 아직도 후생한의원 군청터에는 표석이 남아 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화성이란 이름은 마땅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화성 성곽이 있는 현재의 수원시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제는 행정구역상 남의 동네가 된 지역의 이름이 된 것이다.

1789년 재위 13년째를 맞은 정조대왕은 생부인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원(園)을 당시 수원 행정·군사 중심지(읍치)가 있던 화산으로 이장하고, 이곳에 있던 읍치를 지금의 팔달산 밑으로 옮겼다. 이후 수원은 화성유수부(華城留守府)로 승격됨으로써 행정지명도 화성이 되는 것이다.

화성시에는 마땅히 화성이 있어야 하고 화성이란 명칭은 현재의 수원시에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 옳지만 당시 행정가들의 무지로 현재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두 지방정부의 이름을 서로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다.

방법이 있긴 하다. 두 지역이 통합되면 가능하다. 그러면 화성이 있는 지역을 화성구로 행정구역 명칭을 바꿀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행정구역이 분리된 지 70년이 훨씬 넘은데다가 지역 정치인들과 단체장들의 입장도 각기 달라 통합은 험난한 산을 넘어야 한다.

어쨌거나 비록 화성시엔 화성이 없더라도 ‘수원성’이 있다. 정확한 명칭은 ‘수원고읍성(水原古邑城)’이다. 그 옛날 이름은 ‘수원성’이나 ‘수원읍성’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수원고읍성(水原古邑城) 토성.(사진=김우영 필자)
아직도 남아 있는 수원고읍성(水原古邑城) 토성.(사진=김우영 필자)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은 ‘고려 때 수원에 읍성으로 쌓았으며, 조선 정조 13년(1789)에 사도세자의 무덤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읍성을 쌓을 때까지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백제시기에 쌓았다는 주장도 나온바 있다.

성곽은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산1번지, 현재 융릉건릉을 감싸고 있으며 1986년 9월 7일 경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본래 낮은 산능성을 이용하여 계곡 아래의 평지까지 에워 싼 형태였으나, 성터의 대부분이 무너지고 남아 있는 부분은 길이가 540m 안팎이다. 흙을 다져 쌓은 것으로 보이는 성벽은 윗부분이 2∼2.5m이고 높이는 4∼5m이며, 동문터와 서문터로 추정되는 부분도 있다. 옛 기록에 의하면 성의 둘레가 1200m쯤 되며 성안에는 2곳의 우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성벽을 자연지형에 따라 복원하여 보면 3,500m쯤 되어 큰 차이가 난다’고 기록돼 있다.

문화재청은 이 성이 조선시대까지 읍성의 기능을 하다가 행정조직상의 정비와 사도세자(후에 장조로 추존) 능 이장에 따라 사용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한다.

지금까지 운전을 배운 적 없고, 당연히 자가용승용차도 없는 나는 얼마 전 벼르고 별러 수원고읍성을 다시 답사했다. 팔달문에서 정남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화성시 송산동 존슨동산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융릉건릉 앞으로 갔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능역으로 가는 이 숲길에 서면 편안하다.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소풍을 나왔지만 번잡스럽지 않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 동화된다.

수원고읍성을 보려면 건릉입구 왼쪽 산책길로 접어들면 된다. 이 산책길이 또 명품길이다.

언덕길 끝이 성곽이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성곽인지도 모를 오래된 토성이다.

수원고읍성(水原古邑城)을 따라 걷는 길의 풍경도 아름답다.(사진=김우영 필자)
수원고읍성(水原古邑城)을 따라 걷는 길의 풍경도 아름답다.(사진=김우영 필자)

이 옛 수원성은 옛 수원의 수원관아와 관계 기관, 그리고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이 건물들이 모두 현재의 팔달산 아래로 이사했다.

내가 옛 수원성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90년대 초 신문기자로 일하고 있을 때다. ‘사라지는 것들’이란 기획시리즈 취재 때문에 처음 방문했다. 20여 년 전쯤에도 (사)화성연구회 회원들과 답사를 온 적이 있다.

더위가 본격화되기 전 이곳을 둘러보시길 권한다. 늘 보던 융릉건릉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정말이다.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옛 사람의 말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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