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전문)

“그 섬에 가고 싶다”가 수평선처럼 걸리던 시절. 광고 문구처럼 도처에 쓰이고 널리 애용되어온 시다. 그리운 섬의 그림이랄까. 막연한 동경이며 낭만 같은 것을 부르던 시행이 여전히 크게 닿는다.

'섬'은 이름만으로도 매혹인데 시 앞에 마음이 더 흔들린다. 그냥 툭 던지듯 놓은 두 문장이 더없이 긴 그림으로 시 속의 행간까지 출렁이게 한다. 누구나 품을 법한 섬에 대한 상상과 추억을 꺼내보게 하는 것이다. 단 두 줄의 시가 볼수록 풍성한 의미를 낳으며 짧아서 더 길게 남는 단시의 힘이 오롯하다. 

그런데 시인은 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봤을까. 자연으로서의 섬은 바다에 에워싸인 채 외떨어진 모습이라 외로워 보인다. 뭍의 해안보다 더 거센 파도와 바람에 부딪히며 뾰족 솟은 채 살아간다. 태풍 앞에서는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작은 섬도 많다. 물론 제주도며 울릉도 같은 큰 섬도 있지만, 대부분 섬은 홀로 외따로 떨어져서 고독한 고립으로 비친다.

시의 섬도 그런 고립감의 은유일까. 섬과 꼭 같지는 않더라도 세상에도 섬이 많다. 사람들 사이만 봐도 참으로 다양하고 미묘한 거리가 있으니 말이다. 딱히 규정하기 어려운 공간도 존재한다. 바람이나 감정이나 생각 등이 오가는 사이 같은 것. 보일 듯 말 듯 무수한 그 사이를 ‘가깝다/멀다’로 표현해온 것도 그런 데서 발생하는 거리감의 명시이자 확인이겠다. 

“그 섬에 가고 싶다”고? 그냥 확 사로잡혔었다. 그런데 다시 읽어도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분명히 드러나진 않지만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 섬”, 거기 가고 싶다는 언술은 무엇을 깨우려는 마음의 표명인가. 더 알고 싶은 사람들 사이의 모호한 섬에 대한 열망인가. 그게 무슨 감정의 섬이든, 그냥 가고 싶다는 말에서 일렁이는 희망 같은 것을 엿본다. 

시 속의 섬은 자연의 섬과는 다른 섬이다. 아니 다르면서 같거나 비슷한 섬이다. 보이진 않아도 느껴지긴 하는 섬세한 감정의 거리들. 이념이든 사랑이든 그 차이가 커지면 멀어지며 섬도 커질 것이다. 차이를 줄이면 사이가 가까워져 버석거리던 섬쯤은 없어지게 할지도 모른다. 

그 모두의 은유라도 섬! 하면 그냥 설렌다. 푸르른 어디선가 출렁이는 섬으로 시처럼 당장 떠나고 싶어진다. 코로나 와중에도 많이 찾은 게 섬이다. 그 섬이 있어 바다도 더 푸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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