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역은 일제 강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3.1운동의 불길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강하게 타올랐다. 그런 만큼 독립운동가도 많았다. 임면수 김세환 이선경 김향화 조문기 등이 비교적 많이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이었지만 이들 외에도 잊혀졌거나 최근에서야 조명되고 있는 애국지사들도 많다.

이선경의 언니 이현경과 남동생 이용성도 그렇다. 때마침 수원 구 부국원에서 제76주년 광복절을 맞아 수원 산루리 출신 독립운동가 이현경·선경·용성 삼남매의 삶을 조명하는 전시회 ‘산루리 삼남매의 독립운동’이 열리고 있다. 산루리는 현재 팔달구 중동ㆍ영동ㆍ교동 일대의 옛 지명으로 수원화성 화양루(華陽樓) 아래에 있어서 ‘산루(山樓)동’, ‘다락골’이라고 불렸다. 이 마을에서 수원의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태어났다.

‘산루리 3남매’ 가운데 순국 100주년을 맞은 이선경(1902~1921)은 목숨을 바쳐 조국 독립을 꿈꾼 대표적인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 중 한사람으로 ‘수원의 유관순’이라 불린다. 이선경은 수원 보통학교를 마친 뒤 숙명 여학교, 경기 여자 보통학교에 입학, 서울로 통학을 한다. 이때 산루리 출신 학생 박선태, 최문순 등과 함께 '구국민단'을 결성, 상해판 ‘독립신문’ ‘애국찬가’ 등의 신문들을 각 마을에 배포했다. 체포된 독립운동가들의 가족을 구호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러나 ‘상해임시정부 적십자’ 간호부가 되기 위해 상해임시정부를 가려다 경성에서 체포됐다. 이선경은 유관순 김향화 등이 갇혔던 서대문 감옥의 여감방에 투옥됐다. 열아홉 살의 이선경이 받은 고문은 필설로도 형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혹독한 고문으로 몸이 망가져 법정에 출석도 못 할 정도가 되자 일제는 옥사를 막기 위해 석방했다. 하지만 석방 9일 만에 순국했다.

장녀 이현경(1899~?)은 일본에서 유학 중인 1921년 3월 1일, 일본 동경 히비야 공원에서 3.1운동 2주기를 맞아 만세 시위를 하다가 체포됐다. 귀국 후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전국적인 여성운동 조직인 ‘근우회’를 창립(1927년) 민족계몽운동과 여성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한 후에도 항일 운동을 계속했다.

막내 이용성(1906.4.3~1974)도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수원청년동맹’(1929~1934), ‘수원체육회’(1929년 설립) 등에서 활동한 것이다.

이들 3남매의 독립운동은 영원히 기억돼야 한다. 많은 시민들이 오는 11월 28일까지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회에 많이 찾아와 주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