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조오현, 「내가 나를 바라보니」 전문)

지구촌이 ‘위드 코로나’로 가려나 보다. 코로나 종식이란 애당초 불가능한 꿈이었던 게다. 하지만 지구에 함께 사는 게 코로나바이러스뿐이랴. 조금만 돌아봐도 수많은 균과의 공존이 지상의 우리네 삶이다. 그간 퇴치한 병이나 균보다 같이 사는 것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들도 살자고 나왔으니 생존에 목숨 거는 것은 당연한 진화겠다. 인류보다 앞서 지구에 나와 지금까지 온갖 곳을 헤집는 바퀴벌레는 그중에도 끝판왕이다. ‘오죽하면 바선생’이라는 별칭까지 얻었을까만. 엄청난 생명력과 번식력에 지능까지 높아 지구의 오랜 주인 같은 생존으로 그들만의 지구력을 증명한다. 24일간 먹지 않아도 생존함은 물론 위기 시 순간지능이 340까지 솟는다니 소름 끼치는 능력이다. 그에 비하면 사람은 지능으로 살아남아 살고 있는 게다.  

시인은 그런 벌레를 달리 본다. 자신을 오래 바라보며 한 마리 벌레로 존재를 다시 보는 것. 무금선원(無今禪院)이라는 선방에서 깊이 파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더 훤히 보이며 선취도 나오는가. “온갖 것/갉아먹으며/배설하고/알을 슬기도 한다”는 벌레로 빗댄 구체적 형상에 그것이 실은 우리 모두의 모습임을 돌아본다. 한 꺼풀만 벗기고 보면 우리도 먹고 배설하고 번식하는 버러지와 별로 다를 것 없는 생물인 것이다. 알이나마 슬고 있다면 다행이랄까.

그런 생각이 더 드는 요즘, 균과의 동거가 길다. 한 마리 벌레 같은 무력감에서 허우적대게 한다. 계속되는 거리 두기로 자신을 더 들여다보다 무기력한 존재임을 확인하기도 지친다. 지구적 위기라고 견디고 버티지만 살맛 돋울 기운마저 점점 빠겨나가는 느낌. 그런 와중에도 독서로 자신을 되세우는 사람들이 많은지, 도서관 책 대출이 늘었다는 소식이 반갑게 들린다.

절망이 희망을 압도할 때, 그 판을 어떻게 뒤집을까. 먼저 생각부터 뒤집어야 뭔가 희미하게라도 보일까. 도전이나 꿈이 없으면 좌절도 없을 테니 말이다. 어둠도 오래 응시하면 밝아지듯, 딛고 일어설 길이 비쳐올지 모른다. 문 하나를 닫으면 다른 문을 열어둔다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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