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거리 전경.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나혜석거리 전경.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나혜석거리는 동수원 중심상업지역인 인계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1980년대까지 ‘인도래’로 불렸다. 인도래는 현재의 시청부근 중심 상업지역의 과거 지명이다. 1967년 수원 구도심을 통과했던 국도1호선의 차량을 우회시키기 위해 경수산업도로가 계획됐다. 동수원 개발은 경수산업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추진됐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78년 동수원 개발을 위한 도시계획이 추진됐다. 이어 1980년 5월 29일 인계동과 권선동, 세류동 일원이 권선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로 결정됐다. 사업추진은 1981년 11월 17일부터 시작됐다. 권선토지구획정리사업이 완료돼 1987년 1월 수원시청이 인계동 현 청사로 이전함에 따라 동수원개발이 본격 추진됐다.

‘김충영의 수원현미경' 37회 '수원시청사에 얽힌 이야기’와 제42회 ‘경기아트센터에 얽힌 이야기’에서 밝힌 바 있지만 권선토지구획정리사업이 완공될 무렵인 1984년 매탄1택지개발사업지구가 결정됐다. 이 사업은 한국토지개발공사가 시행자로 지정됐다. 이후 개발계획 수립과정에서 시청앞길 북쪽과 남쪽에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들 것을 요청했다.

매탄1지구 보행자 전용도로 모습. 1990년 1월.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매탄1지구 보행자 전용도로 모습. 1990년 1월. (사진=수원시 항공사진서비스)

이 때 보행자 전용도로와 효원공원이 개발계획에 반영됐다. 보행자 전용도로는 효원공원에서 샤르망오피스텔(구 농조예식장)까지 폭 20m, 길이 440m로 계획됐다. 처음에 조성한 보행자도로는 산책공원 차원의 도로였다. 당시 동수원은 시가지 형성이 늦어지고 있었다. 도시기반시설이 없는 곳에 택지만 조성되다보니 시가지 형성이 지연됐다. 

수원시청 뒤 상업지역에는 1990년대 중반까지도 건축이 이뤄지지 않아 자동차 운전연습장이 되곤 했다. 매탄1지구 보행자도로 역시 시가지 형성이 되지 않았다. 당시 한국토지개발공사는 2년내 건물을 짓는 조건으로 토지를 분양했다.

수원시청 일대 모습. 1990년 1월. (사진=수원시 항공사진서비스) 
수원시청 일대 모습. 1990년 1월. (사진=수원시 항공사진서비스) 

그러다 보내 매탄1지구에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100평이나 되는 땅에 30~40평 단층건물이 들어선 것이다. 1990년대 중반이 되자 시청뒤편은 시청이라는 수요에 따라 제대로 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청뒤편은 제법 시가지가 형성됐다. 

그러나 매탄1지구는 단층의 임시건물이 즐비했고 상권형성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보행자도로는 수목과 잡초만 무성한 우범지대로 전락하게 됐다. 1994년 6월 필자는 도시과 도시계획계장에서 건설과 도로계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당시 필자는 경기도문화예술회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임광아파트에 살았다. 그런 이유로 걸어서 출퇴근을 하면서 보행자도로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도로계장으로 근무하던 1995년 7월 1일 민선시대가 되면서 심재덕 시장이 취임했다. 심재덕 시장은 필자에게 많은 과제를 주었다. 

1996년에는 도로계를 도로과로 승격을 시켜서 도로과장으로 발령을 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1997년 심 시장께 보행자도로 정비계획을 말씀드렸는데 허락을 해주셨다. 보행자도로를 리모델링해 명소를 만들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므로 무엇보다 설계가 잘 돼야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도로의 경관보다 기능만 충족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어느 날 사무실에 젊은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자기가 일본에서 경관디자인 공부를 하고 일본 경관설계사무실에서 5년 정도 근무했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경관설계사무소를 개업한 이레환경 여상헌 대표라고 소개했다. 당시 필자는 도로와 교량 등을 건설하면서 경관이 멋진 디자인을 갈망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계동 보행자도로 개선사업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자기가 해보겠다고 했다. 설계비는 수의계약 금액만큼만 받겠다고 했다. 그래서 설계가 시작됐다. 설계과정에서 주변 상가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주민들은 보행자전용도로보다 차도를 만들어 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주민들에게 보행자전용도로의 장점을 설명해야 했다. 이곳은 수원에서 유일한 곳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당장은 차도가 되면 활성화는 빠를지 모르겠으나 길게 보면 보행자전용도로의 장점이 더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인 모임체가 있어야 공사하는 과정에서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상가번영회를 결성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하여 '나혜석거리 상가번영회'가 결성됐다.

설계과정에서 필자는 당시 일본의 현장을 견학하고 싶었다. 그 당시는 외국에 나가는 것이 어려운 시절이라서 시청과 구청 담당자들에게 자부담 일본견학 계획을 알렸다. 그러자 구청과장과 계장, 용역사 직원들 14명이 참여했다. 드디어 1996년 11월 10일부터 13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 나고야를 다녀오게 됐다.

일본 도쿄 경관거리에서의 기념촬영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일본 도쿄 경관거리에서의 기념촬영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당시 일본에서는 도로건설 사업 추진 시 경관계획을 반영해 설계를 추진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수원시에서도 도로공사를 추진하면서 경관설계를 반영했다. 이같은 노력은 한국도로공사와 전국 지자체에 전파돼 우리나라에서도 경관설계가 의무화되는 계기가 됐다.

1998년 가을, 보행자도로 설계가 완료됐다. 인계동 보행자 전용도로는 길이가 400m, 폭은 20m였다. 광장이 1개소, 분수대가 2개소, 바닥포장은 화강석과 타일로 계획됐다. 수목은 계수나무와 벚나무를 계획했다. 조명과 음향시설이 계획에 반영됐다. 공사비는 30억원으로 설계돼 공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필자는 도로과장에서 도시계획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이는 필자에게 도시계획은 물론이고 화성성역화사업을 맡기고자 하는 뜻이었다.

당시 남우철 건설국장은 “보행자전용도로 정비사업을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추진한 사업이니 도시계획과로 가지고 가서 마무리 하라”고 했다. 이종구 도시계획국장과는 합의를 보았다고 했다.

나혜석 동상 제막식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나혜석 동상 제막식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그런 연유로 보행자전용도로 사업을 도시계획과에서 추진하게 됐다. 심재덕 시장이 어느 날 필자를 불렀다. 보행자도로 이름을 ‘나혜석거리’로 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쪽의 보행자 도로는 ‘난파거리’를 만들자고 했다. 아마도 이즈음 결성된 나혜석기념사업회의 건의가 있었던 듯 했다.

그래서 도시계획과에서 나혜석거리를 추진하게 됐다. 이후 문화관광과에서 나혜석 동상과 조형물 등을 설치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수원에서도 2002월드컵 축구경기가  열리게 됐고 월드컵 준비를 한참 할 때 심재덕 시장은 나혜석 거리 중간지점인 사거리에 화장실을 만들자고 했다. 그리하여 여유 돈으로 화장실 설계를 마치게 됐다. 

나혜석거리에서 월드컵 한국대 포루투칼 16강전(2002.6.14) 응원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나혜석거리에서 월드컵 한국대 포루투칼 16강전(2002.6.14) 응원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그리고 1989년 하반기가 되자 1990년도 예산에 나혜석거리 화장실 사업비를 반영했다. 그런데 의회심의 과정에서 반대에 부딪치고 말았다. 아무리 화장실이 필요하다고 하나 나혜석거리 중간 지점 사거리에 화장실을 만드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해 결국 예산이 삭감되고 말았다.

나혜석거리는 이제 수원의 명소가 됐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 되면 수원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이야기꽃을 피우는 추억의 명소가 됐다. 그리고 가을이면 환경위생과에서는 나혜석거리 음식 축제를 개최한다. 그러나 문제도 있었다. 나혜석의 생가 터가 신풍동에 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후 행궁동에서도 나혜석 생가 터 축제를 개최하게 됐다.

나혜석거리 음식문화 축제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나혜석거리 음식문화 축제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일부에서는 나혜석거리 명칭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하는 말들을 한다. 어쨌거나 수원에서 나혜석 축제가 나혜석 거리와 행궁동 생가 터에서 벌어지는 것이 꼭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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