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입(立)’자 에는 ‘선 다’는 뜻 이외에 ‘곧’ ‘즉시’라는 뜻도 있다.

4계(입춘·입하·입추·입동)에 속한 명칭에 ‘들 입(入)’자를 쓰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입동(立冬)하면 이제 곧 겨울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제가 그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얼마전부터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지고 밤낮의 길이도 눈에 띄게 바뀌었다.

세상은 아직 가을인데, 겨울이 호시탐탐 고개를 들이미는 형국이다.

추운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았음도 실감 난다. 역시 절기는 세월을 속이는 법이 없다.

4계를 포함, 24절기는 달이 아니라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계절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고대 중국 주나라 때 고안됐고 달력에 쓰인 것은 6세기 초 위나라 때부터라고 한다.

당시 통용되던 음력이 계절을 잘 반영하지 못하자 농사용 절기를 따로 만들었던 것이다.

24절기는 춘·하·추·동 계절별로 각각 6개의 절기로 이뤄진다.

명칭은 앞서 말한 4계절과  더위(소서·대서), 추위(소한·대한), 비와 눈(우수·곡우·소설·대설) 등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만큼 24절기의 날짜는 매년 조금씩 다르다.

그중 열아홉 번째 절기가 어제 지난  입동이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후 약 15일,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전 약 15일 무렵이다.

겨울로 들어서는 날이라고 해서 예부터 김장 등 겨울 채비를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입동은 날씨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만큼 노인 등 소외계층에 대한 온정이 시작되는 절기다.

지역마다 조금은 다르지만 입동맞이 미풍양속도 있다.

치계미(雉鷄米) 잔치가 그것이다. 여기서 치는 꿩을, 계는 닭을, 미는 쌀을 뜻한다.

마을에서 십시일반 추렴해서 자발적으로 벌이는 잔치다. 가을걷이를 끝낸 일종의 ‘보양식 파티’인 셈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빈촌에서는 논두렁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을 대접하는 ‘도랑탕 잔치’를 벌였다.

그런가 하면 동국세시기에는 ‘입동을 전후 내의원(內醫院)에서 임금에게 우유를 만들어 바치고,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나이 많은 신하들에게 우유를 마시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겨울철 쇠약해지기 쉬운 노인공경 풍속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철을 모른다'는 것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를 모른다는 말과 같다.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이를 빗대 절기를 모르면 '철부지'라고 불렀다.

소외받는 이웃들의 추위가 더욱 깊어지는 계절 초입이다.

입동을 맞아 다시 한 번 우리 주위를 둘러보는 ‘철든’ 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