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일보에서 자주 보는 칼럼 중의 하나는 ‘김만곤 교육논단’이다.

글쓴이는 (주)비상교육 자문위원이라고 했는데 김갑동 수원일보 발행인에게 물어보니 선생님 출신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교사 출신이라고 하면 좀 답답하거나 고리타분한 사고의 소유자라는 인식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가르치려는 버릇이 나타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이 분의 글은 그렇지 않다. 배려가 있다. 글맛도 참 좋다. 기분 나쁘지 않은 촌철살인도 보인다.

이번엔 “아름다운 교육자인 건 분명하지만 세상일에는 더러 멍청한 면을 보여주는 K 선생님의 명퇴” 소식을 듣고 “남의 얘기가 아니구나 싶었다”면서 질문을 쏟아 놓았다.

앞으로 40여년을 골프나 치고 해외여행을 다니며 놀겠는가? 육십을 바라보며 통닭집을 운영해보겠는가? 지게차 운전 기능사 자격증이나 한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요양보호사를 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겠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 경험을 버리고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며 명퇴 재고를 권유한다.

그렇다. 섣부른 명퇴는 본인을 위해서나 아이들을 위해서나 옳지 않다. 물론 젊은 교사들의 앞날을 위해 일찍 물러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의 말대로 교사는 전문가다.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의 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경륜이 그들에게 있다.

명퇴 이야기를 하다 보니 ㅈ이란 선배가 생각난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40대 초반 공무원 생활을 접었다. 사업을 한답시고 중국살이 2~3년에 가진 돈을 다 까먹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이 일 저 일 손을 댔지만 공무원 출신이 헤쳐 나가긴 어려운 난제들이 산적해 거듭 실패하는 불운을 겪고 있다. 이제 70이 훨씬 넘은 나이, 지금도 그 속엔 뭐가 들었는지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들고 여기저기 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 그냥 있었으면 변두리 동장이라도 했을 것이고 연금도 착실히 쌓여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덜 했을 텐데.

이처럼 자의로 명퇴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의반 타의반 명퇴를 선택한다. 공무원들은 정년을 1~2년 남겨놓고 명퇴를 하거나 사회적응 명분의 이른바 ‘교육’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이 교육이지 집에서 놀라고 주는 말년 휴가다. 정년보다 일찍 직장에서 나오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평생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29일 수원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채용 한마당. (사진=김우영 필자)
29일 수원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노인일자리 채용 한마당. (사진=김우영 필자)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가는 지금 명퇴의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내 고등학교 동창 ㅇ도 정년을 2년 앞두고 수원시청에서 명퇴했다. 대학 다니는 아이도 있고 다른 아이도 혼인을 안했으니 돈 들어 갈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와서 공무원이 됐으니 근무 기간이 길지 않아 공무원연금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임시직으로 취업을 했는데 오전엔 정원이 있는 집 관리와 청소를 해주고 오후엔 또 다른 건물에 가서 관리를 해준다. 두 곳에서 받는 보수를 합쳐도 월 150만원 정도 밖에 안된다. 사실 퇴직을 하고 60이 넘은 지 오래된 이가 이 정도 수입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수원시가 ‘2022년 노인 일자리·사회활동 지원사업’에 참여할 노인 4976명을 29일부터 다음달 17일까지 모집하고 있다.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수급자가 참여할 수 있는 공익활동은 ‘노노케어(老老-care)’, ‘학교급식’, ‘공공시설 봉사’ 등이 있는데 한 달 30시간(하루 3시간 이내) 활동하면 활동비를 최대 27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장애인서비스 지원’,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지원’ 등은 한 달 60시간(하루 6시간) 활동하면 최대 71만원의 활동비를 받을 수 있다.

하루 세 시간 일하고 한 달에 27만원 받는다면 노인 입장에서 큰 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용돈이 아닌 생활비라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하루 6시간 씩 한 달 일하면 71만원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는 그나마 생계에 보탬이 되겠다. 그런데 27만원 일자리가 4130명인데 비해 71만원 일자리는 615명밖에 되지 않는다. 또 근무기간도 10~11개월이다.

아무튼 노인들이 일 할 수 있는 곳은 극히 한정돼 있고 보수 또한 ‘용돈’ 수준이다.

수원시청에서 근무하는 ㅅ이 술 한 잔 사겠다고 해서 만났다. 그에게 될 수 있으면 명퇴하지 말고 끝까지 남아 있으면서 노후를 설계하란 조언을 해줬다. 무슨무슨 자격증이 유망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옆에 있던 ㅇ형이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그렇게 잘 아는 너는 왜 미리미리 노후준비를 하지 못하고 그 모양으로 살고 있느냔 눈빛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구... 내가 못했으니까 더 잘 보인다구요. 나도 눈빛으로 대답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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