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요 산책로에 그 집이 있다. 100년 정도 될 것 같은 한옥인데 지나칠 때마다 이 집이 궁금했다.

팔달문에서 장안문 쪽으로 조금 걸으면 오른 쪽으로 24시 남문마트와 나르지오워킹화 가게가 있다. 그 사이에 있는 길로 들어가면 고려IT직업전문학교가 나오는데 그 옆 골목에 이 집이 있다. 수원 팔달구 팔달로2가이며 도로명 주소는 팔달구 정조로788번길 11-5다.

술벗 ㅇ박사가 어렸을 때 이 집에 세 들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ㅇ박사는 수원비행장 파일럿 등 여러 가구가 함께 살았다는 얘기도 해줬다.

수원권번으로 사용했던 집이 지금도 남아 있다. (사진=김우영 필자)
수원권번으로 사용했던 집이 지금도 남아 있다. (사진=김우영 필자)

현재는 서일관 청년철학관 작명연구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데 이 자리에서만 40년이 넘었다고 한다. 서일관 소장은 경기일보에 오랫동안 오늘의 운세를 연재할 정도로 역술계에서는 유명한 인물이다. 사단법인 한국역술인협회 경기도지부 회장, 한국역리학회 경기도지부 회장, 한국작명협회 경기도 총회장도 역임했으니 이 계통에서는 대표적인 명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전에는 어떤 사람이 살았을까. 의문에 대한 해답은 수원시정연구원 수원학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유현희 전문연구원과 홍현영 연구원으로부터 나왔다.

일제 강점기 권번이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원권번의 위치에 대한 궁금증이 컸었는데 이렇게 궁금증이 해소됐다.

1919년 삼일운동 때, 수원권번 기생 약 30명이 건강검진을 받으러 당시 자혜의원으로 사용되던 화성행궁으로 갔다가 김향화의 주도로 만세를 불렀다. 바로 앞 수원경찰서에는 왜경이 총칼로 무장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왜경은 김향화를 주동자로 체포했고 2개월 간 혹독한 고문을 받은 뒤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으로 넘겨져 공판에 회부,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김향화가 갇힌 감방에는 유관순도 있었다.

이 일에 대해 왜경이 조선총독부에 보고한 1919년 3월 ‘조선소요사건’ 경기 수원지역 보고서에는 "29일에 이르러 기생 약 30명이 자혜의원 앞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밤에는 상인, 노동자 및 무뢰한 등이 시내 각소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내지인(일본인) 상점에 투석하고 창문을 파괴하는 등 폭행이 심해져 수원 경찰서원과 보병 및 소방 조원이 협력하여 경계 중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기생들의 의거를 알게 된 수원 지역민들이 그날 저녁 거센 만세운동을 이어갔다는 것을 이 기록이 전해준다.

김향화는 1950년에 사망했다는데 매장된 장소와 후손도 확인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수원시는 자료연구·발굴작업을 거쳐 2008년 국가보훈처에 김향화를 독립유공자로 포상해달라고 신청 했고,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러니 그가 일했던 권번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현희 전문연구원과 홍현영 연구원에 따르면 수원권번은 1930년대 중반까지 현재 통닭거리의 대봉통닭 뒤편에 있었으며 뒤에 이 위치로 이전한 것이라고 한다.

흔히 기생이라고 하면 ‘창기’, ‘작부’를 떠올리지만 이는 일제 강점기 일본의 그릇된 성풍속이 유입되면서 이미지가 왜곡된 것이다. 권번기생은 우리 전통 예악문화의 계승자였다.

신현규 중앙대 교수는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기생제도는 조선시대에 발전하여 자리를 굳히게 되어, 기생이라 하면 일반적으로는 조선의 기생을 지칭하였다. 사회계급으로는 천민에 속하지만 시와 서, 음률에 능해 교양인으로 대접받는 등 특이한 존재였다. 권번은 정식 국악교육기관은 아니었으나 민속음악의 교육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한 셈”이라고 밝혔다.

또 권번에 소속된 기생들은 자선 공연활동도 펼쳤다. 1922년 5월 수원권번은 수원극장에서 자선공연을 개최, 수원상업강습소(현 수원고등학교와 수원중학교) 건물 신축기금으로 기부하기도 했다.

이 집이 그들이 활동하던 곳, 권번으로 사용했던 곳이라니...이 골목을 그렇게 자주 지나다녔지만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니 참 무심한 인간이로다.

이 집 앞에 안내판이라도 붙여서 수원기생들의 의기(義氣)를 후세에 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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