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형이 없다. 장남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다보면 기대고 싶고 흉금을 털어놓을 형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사람을 만났다. 같은 수원에 살면서도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볼 때마다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주는, 나도 친형님처럼 따르는 ㅇ형님이다.

형님은 나보다 10살이 더 많다. 내 10대 후반에 만나 지금껏 변하지 않는 형제 같은 정을 나누고 있으니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형님은 어려운 환경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때 월사금(月謝金)이란 게 있었다. 월사금을 못 내면 학부모를 호출하기도 했고, 돈을 가져 오라고 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형님은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월사금을 못냈다. 월사금을 가져오라고 집으로 보내자 아예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 공부를 했다. 시인이 됐고, 신학대학을 마쳤다. 공직생활을 하다가 신문사에 들어가 문화부장, 논설위원까지 거쳤다.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단체에서 중책을 맡고 있으며, 시 전문잡지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내 ‘여자사람친구’ ㅈ은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 여성시조 시인 중에서 시조를 가장 잘 쓴다.

그도 가정형편상 중학교를 마치고 방송고등학교, 방송대학교를 거쳐 아주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논문은 “내가 받은 논문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말할 정도로 공을 들였고 내용도 훌륭하다.

공무원으로서 노동운동을 하던 ㄱ은 요즘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데 노동운동만으로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역시 가정형편이 뜻과 같지 않아 초등학교만 마친 뒤 덤프트럭 운전사, 전기기술자, 중동파견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검정고시를 거쳐 명문대학에 들어갔다. 공부에 원한이 맺힌 것처럼 밤새워 책을 보고 논문을 써대더니 석사학위만 네 개를 받고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개천에서 용난다’고 했던가. 요즘은 금수저가 아니면 주류로 자리 잡기가 어렵다고 한다. 흙수저도 없는 사람은 영원히 밑바닥 생활을 해야 하며 그 자식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사실 그런 면도 있다. 법학전문대학원인 로스쿨이 그렇다. 예전엔 누구나 차별 없이 사법고시를 통해 판·검사, 변호사를 할 수 있었지만 이젠 로스쿨을 졸업한 사람에게만 검사나 변호사 시험 볼 권리가 주어진다, 로스쿨을 갈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법조인이 되고 싶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로스쿨 진학의 꿈을 꿀 수 없는 젊은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어떤 친구가 지난달 5일 SNS에 차기 리더는 '정상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면서 “가난하게 태어났는데 그걸 내세우는 사람들 정말 싫다. 가난하면 맺힌 게 많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이용한다. 정말 치졸하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열등감이 많다. 검정고시 친 것을 자랑한다. 정상적으로 단계를 밟아간 사람들을 모욕할 뿐” “올바른 부모 밑에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누군들 가난하고 싶겠는가, 올바른 부모 밑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 자신도 정규학력은 고졸이다. 대학 문턱은 밟았지만 졸업을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시인이 됐고, 별정직이지만 공무원도 좀 해봤고, 일간 신문사 기자에 논설위원도 해봤다. 시집과 지역사 관련 책도 여러 권 냈다. 이곳저곳의 ‘위원’으로도 위촉됐다.

망언 당사자야 그 나름의 이른바 ‘소신’이라고 하겠지만 이런 망언을 용납하는 사람들도 있는 세상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참 슬프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ㅇ형님, ㅈ시인, ㄱ박사는 저 망언을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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