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됐다.

모두들 행복하시라. 건강하시라. 아프지만 않으면 웬만한 시련은 극복할 수 있도록 조물주가 이 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19가 올해에는 소멸됐으면 좋겠다.

중국 당나라 말기의 선승 조주의 법제자로 선신이라는 이가 있었다.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선신이 살던 엄양산의 이름을 따 엄양존자라고 불렸다. 그의 주변에 호랑이 두 마리와 뱀 한 마리가 항상 맴돌았다고 한다.

그가 조주 선사를 찾았다. “한 물건도 갖고 오지 않았을 때는 어찌합니까?” 라고 물었다. 조주의 말은 “방하착(放下着-내려 놓으시게)!”이었다.

이에 엄양은 “한 물건도 갖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뭘 내려놓으라고요?”라고 했다. 시쳇말로 덤빈 것.

조주선사는 “착득거(着得去)!”라고 일갈했다. 비운다는 마음에 집착했으니 다시 지고 가라는 뜻이다.

선사들은 ‘방하착’이 “보이지도 않고 실체가 있는지도 모르는 마음이 만들어 내는 집착과 갈등, 분노, 미움 등을 벗어 던지면 홀가분해지고 분별심이 사라져 편안해진다”고 한다.

환갑이 지나면서 편안해짐을 느낀다. 아, 이젠 됐다. 지금 세상을 떠나도 억울하다는 생각은 안 들겠구나.

지금이야 환갑잔치, 칠순잔치가 없어졌지만 내 어릴 적엔 환갑잔치를 성대하게 했다. 아무리 못사는 집이라도 동네잔치를 열었다. 친척이나 이웃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아주 가까운 사이면 돼지 한 마리에 막걸리 열 말, 친한 이웃이면 닭 서너 마리에 국수 대여섯 관을 보냈다. 없는 집에서는 기르던 닭이 낳은 계란 한 꾸러미라도 들고 왔다.

가진 집의 환갑잔치는 성대했다. 수원에서 기생도 두엇 불러 장구반주에 ‘권주가’와 ‘태평가’ ‘석탄가’, ‘육자배기’ 소리가 담장을 넘어 동네에 퍼졌다. 겨우 열 살 무렵, 그것도 남자라고 기생의 미모와 소리에 반해 넋을 잃고 입을 벌린 채 바라보다가 동네 친구의 놀림을 받았다던가.

아무튼 나이가 들면서 편안해졌다.

누가 놀려도 별로 화가 나지 않는다. 응, 그래. 나 원래 태생이 그런 인간이여. 그 한마디면 상대방이 오히려 머쓱해한다.

대신 즐거움이 늘었다. 남의 행복이 내 기쁨이다. 주인과 면식이 없는 음식점일지라도 손님들이 바글바글하면 내가 괜히 좋다. 이웃의 아들이 공무원시험에 붙었다는 소식에 함박웃음을 짓는다.

나이가 들면서 또 달라진 것은 초조하지 않다는 것이다. 은퇴 후 불안·초조 증상에 시달린다는 친구들이 있다. 내가 볼 때는 집도 있고 모아 놓은 재산도 넉넉하다. 연금도 내 두 배는 된다. 내게 술도 잘 산다. 좌중을 유쾌하게 하는 재주도 있다. 그런데 불안하다니.

그 친구는 오히려 내가 이상하단다. 자기가 생각하기엔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 뭐가 그리 행복하냐는 것이다.

나에게 불행이 안온다고 할 수 없다. 그때도 이렇게 싱글벙글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건 그때의 상황이다. 지금 그렇지 않은데 미리 불안할 필요는 없다. 지금 여기가 제일 중요하지 않은가.

2021년 12월 31일 나는 밤 10시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과 내일, 지난해와 새해가 뭐가 다른가. 2022년에 뜬 태양은 목욕하고 연지곤지 찍고 나왔나. 늘 같은 태양이 뜰 뿐이다. 그해가 그해다.

그런데 안 그런 모양이다. 잠에 빠졌는데 “아부지, 새해 복많이 받으셔용~” 막둥이의 문자를 시작으로 문자 폭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답을 해주느라 잠은 멀리 달아났다.

가장 많이 해준 답신은 “올해도 여여(如如)하시라”였다. ‘여여(如如)’라는 말은 불가에서 자주 쓰인다. 항상 같고 한결같다는 뜻이다. 마음이 한결같아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사실은 내가 김우영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여러분 모두 올 한해 여여하시라!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