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광교칼럼] 화서동 앵봉산에서 놀던 꾀꼬리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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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광교칼럼] 화서동 앵봉산에서 놀던 꾀꼬리는 어디로 갔을까
  • 김우영 논설위원
  • 승인 2022.01.1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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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논설위원 / 시인

고맙게 단기 일거리가 생겼다. 출퇴근이 신바람난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글 쓰는 일이다. 올해 2월말까지만 마치면 돼서 특별히 출퇴근이랄 것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은 다음 사설이나 칼럼 한편 써 보내고 오전 9시 30분쯤 집을 나선다.

연구실에 도착하면 10시쯤이다.

사실 집에서 해도 되는 일이다. 그러나 출근하는 일이 즐겁다. 구내식당 밥이 마음에 든다. 4500원짜리인데 정성이 들어가 있고 매일 식단이 바뀐다. 같이 밥을 먹을 사람들이 있는 것도 좋다.

‘퇴근’이란 것을 오후 3시 50분쯤에 한다. 요즘은 일찍 날이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퇴근 때는 걷는다. 서호를 한 바퀴 돌기도 하고 옛 서울농대가 있던 경기상상캠퍼스를 산책하기도 한다. 같은 길을 걷는 것보다는 안 가본 길을 선호하기 때문. 이리저리 걷다가 날이 어두워져야 집에 도착한다.

어제는 새로운 길을 찾다 화서동으로 들어섰다. 경부선 철길 옆 높은 지대에 영광아파트가 보이는데 그 옆이 앵봉산이다.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내 20대 중반 이후 재방문한 기억이 없다. 그때 인근 ‘동말’에 어머니 동창이 살았는데 내 취업을 미끼로 돈을 가져가고 나서는 소식이 없어 찾아 갔던 길이다.

만나지도 못하고 터덜터덜 밥도 굶고 걸어서 그 집 뒤에 있는 돌산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그게 앵봉산이었다.

집도 몇 채 없었는데 지금은 아파트가 포위하고 있고 산꼭대기까지 주택들이 가득하다. 올라가는 길을 찾느라 이 골목 저 골목 한참을 기웃거렸다. 겨우 길을 잡아서 올라가니 연립주택 옆에 작은 공터가 나온다. 여기가 정상이다. 그런데 을씨년스럽다.

‘앵봉산(鶯峰山)’ 정상. (사진=필자 김우영)
‘앵봉산(鶯峰山)’ 정상. (사진=필자 김우영)

공터 한쪽 구석엔 ‘앵봉산(鶯峰山)’임을 알리는 표석과 안내판이 있어 겨우 이곳이 옛적 왔던 그곳임을 알게 한다.

표석엔 ‘1789년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조성할 때 이곳에서 돌을 공급했다. 돌의 결이 매우 뛰어나 예로부터 이름난 채석장이었으나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고 써있다.

안내판엔 ‘화서1동 220번지 일대 현 영광아파트 자리에 있던 돌산으로 돌을 캐내는 장소였다가 현재는 영광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개발로 돌산이 깎이거나 폐쇄됐다. 이 곳에서 지난 1978년까지 매년 10월 1일에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다음 해의 풍농을 기원하는 산신제(천제)를 지냈으나 이제는 지내지 않고 마을 주민들은 대신 운동회를 개최한다. 한편 1919년 3·1운동 때에는 이 마을 젊은이들도 앵봉산에 올라가 만세를 부르다가 때마침 소작 관계로 와 있던 권업 모범장(현 농촌진흥청) 일본인 직원들에 의하여 중단되었으나 피해는 없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참 부끄럽게도 예전 ‘수원 지명 유래집’을 집필했는데 내가 거기에 이렇게 썼다. ‘주민들에 따르면 1907년도와 1917년도 사이에 꾀꼬리 종류의 새떼가 많이 날아와 놀았다고 해서 앵봉산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영광아파트 단지 내에서 본 부석소의 흔적. (사진=필자 김우영)
영광아파트 단지 내에서 본 부석소의 흔적. (사진=필자 김우영)

그런데 이미 그 이전에도 앵봉이라고 불렀다. ‘화성지(華城誌)’에는 앵봉(鶯峯)이 부의 서쪽 5리에 있으며 건릉과 현륭원의 산릉 공역 때 돌을 이곳에서 떠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 1872년 ‘수원부지도’에도 축만제 옆 앵봉이 보인다.

아, 정신이 바짝 났다. 아무리 ‘주민들에 따르면’이라고 단서를 달았어도 이렇게 함부로 글을 쓰다니. 조심해야겠다.

어쨌거나 한글 ‘정리의궤’에는 ‘여기산의 맞은편에 또 한 산록이 있는데 이름은 권동으로 골짜기는 비록 깊지 않으나 산을 둘러싼 것이 모두 돌이다. 얼마 지난 뒤에 또 이곳을 얻으니, 이로부터 돌을 뜨는 곳이 점점 넓어졌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권동(權洞)은 어디일까? 화서동 동말 토박이들에 따르면 옛날에 이곳을 ‘건등’, ‘건등골’, ‘권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화성성역의궤’에 따르면 수원엔 부석소가 여러 곳 있었다. 숙지산, 여기산, 권동, 팔달산 등이다. 그 권동에 있는 앵봉산에서 화성 축성에 필요한 돌을 떠갔을까. ‘권동(權洞)의 석록산(石麓山)과 아어산(亞於山)에서도 석맥이 발견’ 됐다는 기록도 보인다. 석록산과 아어산은 또 어딘가.

이 같은 역사가 있는 곳이지만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영광아파트 옆에 그 흔적이 보이지만 위험해서 접근할 수 없다.

아쉽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보존이 됐더라면 좋았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