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포기해버린 학생이 초등 6학년이면 8명 중 1명(고3까지 긴 세월을 또 어떻게 견딜까?), 중 3은 4명 중 1명, 고 2는 3명 중 1명꼴이다. 며칠 전 ‘사교육걱정없는세상’(단체)이 발표했다. 그런데도 잠잠하다. 그것으로 걱정은 또 끝인가 보다. 우리는 왜 이럴까?

요즘 애들은 형편없어! 수학을 포기하다니, 말이 돼? 끝까지 해봐야지, 어렵다고 그만둬? 공부란 모름지기 싫어도 해야 하는 거지. 학생이 어떻게 재미있고 쉬운 공부만 하는가 이 말이야. (A)

왜 아이들을 원망해? 그게 애들 잘못이야? 선생님들 문제지. 잘 가르쳐 봐, 그런 꼴이 나는가? 초등학교 6학년이 뭘 알겠어. 가르치는 대로지. 교육자들 자질 문제야. (B)

교과서를 잘못 만들어서 그럴 거야. 우리나라 교과서가 세계에서 제일 어렵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 좀 쉽게 만들면 아이들도 좋아하고 굳이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야. (C)

교과서는 전문가들이 만들잖아. 그들이 무턱대고 어렵게 만들겠어? 이유가 있겠지.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 것 아닐까? 배울 건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D)

쉽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 수능시험에서 만 점이 수두룩하게 쏟아지면 우수한 학생을 어떻게 뽑아? 어렵게 해서 차이가 나도록 해야 마땅하지 않겠어? (E) …

생각할수록 더 복잡해지고 끝이 없다.

여기 초등학교 아이가 교과서 두 권(수학, 수학익힘)을 가지고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 뭔가 궁리를 해서 교과서의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 풀었다며 의기양양하더니 학교에 가서 그걸 자랑했는데 교사는 시큰둥했고 친구들도 관심도 없더란다. 부모는 뜨악한 표정으로 ‘쟤가 왜 자꾸 저러지?’ 걱정스러워한다.

문제집은 매번 채근을 해야 겨우 풀고 자주 딴소리를 해서 초조하게 한다. 유사 문제를 많이 풀어서 숙달이 되어야 하는데 걸핏하면 짜증을 낸다. 아무리 그래도 중단을 허용할 수는 없다. 수능시험 문제는 숨 쉴 겨를 없이 기계처럼 풀어야 하는 것이고 실수는 등급을 가른다. 학원 강사는 눈감고도 풀 정도로 숙달되어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

수학이 그런 교과일까? “생활 주변 현상을 수학적으로 관찰하고 표현하는 경험을 통하여 수학의 기초적인 개념, 원리, 법칙을 이해하고 수학의 기능을 습득한다.” 이것이 수학이다! “수학적으로 추론하고 의사소통하며, 창의·융합적 사고와 정보 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생활 주변 현상을 수학적으로 이해하고 문제를 합리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한다.” “수학 학습의 즐거움을 느끼고 수학의 유용성을 인식하며 수학 학습자로서 바람직한 태도와 실천 능력을 기른다.” (초등학교의 경우) 이것이 수학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목표다. 수학은 아름답고 즐거운 학문이다. 세계적인 수학자에게 물어 확인해도 좋다. 그런데도 실전에서는 경쟁의식 속에서 “빨리빨리” “실수 없이”가 최고 덕목이 된다. 이탈하면 포기의 늪으로 추락한다.

‘수포자’는 이렇게 해서 생긴다. 평범한 저 대화(A~E)는 수능시험이라는 진원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공부하는 방법을 봐도 그렇고 이른바 ‘킬러 문항’도 그 증거가 된다. 수학은 시간배당이 더 많은 주요교과, 기초교과, 도구교과다. 그런 교과를 수능시험이 나서서 포기하게 하는 건 비정상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의 목표를 개별화, 다변화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최고 대학에 들어갈 기회가 주어졌다는 듯, 그게 민주교육이고 평등인 양 호도하면서 일률적, 획일적으로 가르치고 경쟁하게 해서 실패한 학생들을 쏟아내는 이 교육과 평가가 혐오스럽다. 어차피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길을 가게 되므로 교육은 그 길에 맞는 목표를 설정해주어야 마땅하다.

수포자를 양산하는 수학을 절대평가로 바꿀 수도 있고, 수능시험 자체를 선택하게 할 수도 있고, 학생은 모자라는데도 치열한 경쟁은 여전하다면 아예 폐지해버릴 수도 있다. 선발을 대학에 맡기고 국가는 적극적인 간섭만 할 수도 있다. 한 줄 세우기를 위한 변별력 행사가 전체적 혼란을 야기하고 거의 모든 학생에게 누가 된다면 그런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행복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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