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못 차리게 몹시 바쁘다’를 흔히 ‘눈 코 뜰 사이 없다’고 한다.

다사다망(多事多忙)을 표현하는 우리말엔 왜 같이 뜨고 감을 수 없는 ‘눈,코’가 등장할까?

다 아는 사실이지만 여기서 눈코는 사람의 눈(目)코(鼻)가 아니다. 

그물의 눈과 코를 뜻한다.

성어기(成魚期)에 훼손된 그물의 눈과 코, 즉 구멍을 수선해야 하는데 손질할 짬이 없다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무심코 쓰는 우리말엔 이런 의미를 담은 단어들이 많다.

‘조바심’ 도 그중 하나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초조할 때 쓰는 이 말은 농사일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심’은 곡식 이삭을 비비거나 훑어서 낟알을 털어내는 타작의 순 우리말이다.

그래서 예부터 조 이삭을 털 때 조바심이라 했다.

하지만 조는 이삭이 질겨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온갖 방법으로 비비고 문지르면서 애를 써야 간신히 좁쌀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조바심’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까 봐 마음을 졸인다는 뜻이 됐다.

‘변죽'이란 말도 있다.

요점을 말하지 않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만 하는 경우를 빗대 쓰는 ‘번죽’은 그릇이나 물건의 가장자리를 가리킨다.

따라서 변죽을 울린다는 건 가장자리를 두드려 가운데까지 전달한다는 의미를 담게 됐다.

핵심은 찌르지 못하고 곁가지만 건드린다는 부정적인 뜻이 포함돼 있다.

또 다른 부정적 의미인 ‘도무지’도 있다.

옛날에는 집안에서 또는 개인이 사사로이 죄인을 벌주는 일이 왕왕 있었다.

그중에 물 묻힌 한지를 얼굴에 몇 겹으로 바르는 ‘도모지’라는 형벌도 있었다.

당하는 사람 대부분 숨이 막혀 죽게 되는 끔찍한 형벌인데 그 답답함을 빗대 ‘아무리 해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뜻의 ‘도무지’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단어가 비슷해 흔히 ‘애끊다’와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애끓다’ 도 있다.

‘애’는 ‘창자’를 가리키는 옛말이다.

거기에 액체가 몹시 뜨거워져서 소리를 내면서 거품이 솟아오르다는 ‘끓다’를 붙였다.

그러면서 ‘몹시 답답하거나 안타까울 때’를 빗대 창자가 부글부글 끓을 만큼 이란 뜻의 ‘애끓다’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는 ‘애끊다’와는 속상해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면서 상대의 야속함도 함축되어 있다.

요즘 여야 대선주자들은 물론이고 진영모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 지지율은 답보 상태고, 부동층은 변하질 않고 이를 움직일 방책은 뚜렷 한 게 없고.

때문에 ‘조바심’은 극에 달하는데, 국민의 마음은 ‘도무지’ 알 길이 없고, 후보 단일화는 ‘변죽’만 울려대고 있다.
 
거기에 선거판 사람들의 ‘애끓는 마음’도 벌써 타버린 형국으로 정신줄 놓기 일보직전의 그야말로 '혼미' 그 자체다.

'평소에 잘 하지'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는 대선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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