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영대로 신지번 지도. (자료=네이버지도)
덕영대로 신지번 지도. 경희대삼거리~경희대정문~영통~버스터미널~세류사거리~세류지하차도~세화로~화서지하차도~화서역~성대역~월암IC~의왕시 부곡IC입구교차로까지 연결되는 노선이다.(자료=네이버지도)

덕영대로는 2014년 1월 1일 확정된 신지번 사업에서 부여된 도로명이다. 경희대 삼거리에서 의왕시 부곡IC입구 교차로까지 연결된 도로이다. 덕영대로는 용인시와 수원시, 의왕시에 걸쳐 연결됐다. 덕영대로를 건설한 이야기는 편의상 수원구간을 위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날 수원의 남북간 간선도로는 경수산업도로(경수대로)와 서부우회도로(서부로), 덕영대로를 들 수 있다. 덕영대로의 최초 도시계획은 1972년 8월 도시계획재정비 때 결정됐다. 덕영대로는 경부선철도 북쪽인 수원시 율전동과 의왕시 월암동의 경계지점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경부철도를 따라 성균관대역 ~ 화서역 ~ 수원역 ~ 사류사거리 ~ 터미널사거리 ~ 경희대 정문에 이른다.

1988년 88올림픽을 앞둔 시절 시중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집값이 급속히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태우 정부는 전격적으로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이 때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대 신도시가 발표됐다. 수원은 이 계획에 포함되지 못했다. 당시 북수원에는 100여만 평의 미개발지가 있었다. 

1989년 4월 22일 정부는 1차로 수원에 천천택지개발지구(7만4000평)를 지구지정하게 된다. 뒤이어 5대 신도시로는 200만호 건립이 어렵게 되자 1989년 10월 27일 수원 영통지구 100만평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했다. 정부는 이것도 부족하자 북수원의 미개발지를 소규모(쪼개기)로 택지개발사업 지구를 지정했다. 

북수원 택지개발사업 위치도. (자료=수원시)
북수원 택지개발사업 위치도. 북쪽 서부우회도로와 덕영대로가 만나는 곳에 천천1지구가 보인다. 경부철도를 따라 남쪽으로 천천2지구가 지정됐다. 그리고 남쪽 연초제조창 위쪽이 정자지구이다. 화서역 동쪽으로 화서지구가 보인다. 덕영대로는 4개 지구를 통과하고 있다. 그리고 서쪽으로 정자2지구, 일월지구, 탑동지구가 위치하고 있다.(자료=수원시)

한국토지공사, 대한주택공사, 수원시가 각각 미개발지를 경쟁적으로 선점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 지구 지정된 사업지구는 천천지구, 천천2지구, 정자지구, 정자2지구, 화서지구, 일월지구, 탑동지구 등 7개 지구 356만2000㎡(107만7500평)이었다. 그리고 1995년 1월 수원시 율전동과 의왕시 월암동 경계를 통과하는 의왕~봉담간 고속도로 사업이 착공됐다.

북수원 택지개발사업지구 현황. (자료=수원시)
북수원 택지개발사업지구 현황. (자료=수원시)

수원시는 북수원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개발사업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7개 지구 107만7000평을 7개 지구로 나눠 개발할 경우 단지 간의 부조화는 물론 전체적 개념의 단지 조성이 결여 되고 도로와 하수도 등의 연결성이 미흡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현실이었다. 

그리하여 수원시는 7개 단지를 아우르는 개발구상을 하기에 이른다. 3개 기관으로 하여금 종합계획 수립을 제안했다. 대신 7개 지구 기본계획수립 용역비를 수원시에서 부담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계획에서 제시되는 사업은 각 사업지구에서 부담 시행하기로 했다. 

공동으로 설치하는 시설은 사업지구 면적에 비례해 부담키로 하는 협약서를 체결했다. 필자는 이 사업들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94년 6월 3일자로 도시과 도시계획계장에서 건설과 도로계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북수원권 개발기본계획수립용역은 수원시 도시과 도시계획계에서 담당했다. 이 업무의 주무는 최호운 박사(현 화성연구회 이사장)가 담당했다. 이미 1993년에는 2011년을 목표로 하는 수원시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때 덕영대로 계획의 중요성을 감안, 25m폭의 도로를 35m폭으로 확장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수원역 우회도로 도시계획결정 도면. (자료=수원시)
수원역 우회도로 도시계획결정 도면. 1994년 10월 5일 도시계획재정비에서 수원역 우회도로를 35m폭으로 결정했다.  (자료=수원시)

도로폭을 확장했음에도 수원역 통과 교통에 대한 처리대책이 어려웠다. 계획 수립과정에서 최호운 박사가 수원역우회도로 계획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 도로를 제안한 또 다른 이유는 덕영대로가 수원역 앞을 통과할 경우의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원역 앞에 입체시설을 설치해야 했다. 

그런데 지하하도를 설치할 경우 이미 수원역 광장에는 지하상가가 설치돼 있어 지하차도의 설치가 어려웠다. 또 다른 방법으로 고가도로를 설치할 경우 수원역의 경관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수원역 우회도로를 대안으로 구상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도로계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덕영대로 설계에 들어갔다. 

율전동 수원시 경계지점에서 시작하여 수원역에 이르는 구간의 설계가 진행됐다. 당시 수원역 우회도로까지 설계를 추진해야 했다. 그러나 수원시 예산형편상 도로건설 시기를 예측하기 어려워 수원역 우회도로의 설계는 미루기로 했다. 사업비의 부담은 북쪽의 시점에서 성대역이 위치한 서부우회도로 교차 구간까지는 수원시 일반회계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천천2지구 개발계획도. (자료=수원시)
천천2지구 개발계획도. (자료=수원시)
정자지구 개발계획도. (자료=수원시)
정자지구 개발계획도. (자료=수원시)
화서지구 개발계획도. (자료=수원시)
화서지구 개발계획도. (자료=수원시)

성대역부터 천천지구까지는 토지공사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천천지구 경계부터 영화천 꽃뫼버들교 까지는 천천2지구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영화천 꽃뫼버들교부터 화서지구까지는 정자지구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그리고 화서역에서 화서지구 경계까지는 주택공사가 부담키로 했다.

화서지구 경계부터 수원역 육교까지는 수원시가 부담했다. 그런데 이 구간 흙파기 작업을 시행하자 화강암 돌맥이 나타났다. 이곳의 돌은 단단하여 부딪치면 쇳소리가 날 정도였다. 이곳에서는 엄청난 양의 돌이 나왔다. 

창룡문 성곽연결 부분 모습. (사진=김충영 필자)
1997년 창룡문 옆을 연결한 모습이다. 이 사업은 끊어진 성곽을 연결하고 성내에 다목적 광장인 세계적인 공연장을 만들기 위한 사업이었다. 심재덕시장의 낙선으로 무산됐다. '김충영 수원현미경 3회' 심재덕 시장의 이루지 못한꿈 ‘세계적 야외공연장’에 게재됐다. (사진=김충영 필자)

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화서동 앵봉에서도 돌 뜬 기록이 있었다.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는 차원에서 덕영대로에서 발생한 화강석을 창룡문 성곽연결 공사의 성벽돌로 사용했다. 그리고 남은 돌은 행궁광장 행궁진입로 부분의 박석포장 재료로 사용했다.

2008년 7월 2일 개통식 모습이다. 2001년 착공해서 7년만에 개통했다. (사진=수원시포토뱅크)
2008년 7월 2일 개통식 모습이다. 2001년 착공해서 7년만에 개통했다. (사진=수원시포토뱅크)

이후 수원역 우회도로는 화서지하차도와 세류지하차도가 건설되어 세화로 라는 도로가 되었다. 그리고 세류사거리에 고가차도가 건설되고, 터미널사거리에도 고가차도가 건설되어 2008년 7월 2일 덕영대로 건설이 완료되어 수원의 남북과 동서를 잇는 간선도로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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