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혁명이라면 군사혁명을 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군사혁명은 혁명 중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상에 등장한 혁명들 중에는 군사혁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혁명, 과학혁명, 시민혁명 등이 있는가 하면 교육혁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꼭 필요한 혁명이 교육혁명입니다.

우리 사회, 우리나라가 바뀌려면 교육혁명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영특하기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국민들에 비하여 손색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을 똑똑하게 낳아 멍청하게 기릅니다.

교육이 혁명적으로 바뀌어지지 아니하고는 선진 사회, 선진 국가로 나가는 길이 열리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가 진정한 교육혁명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여야 할 때입니다.

총명한 국민들이기에 지도자들이 방향을 바로 잡아 교육을 새롭게 하면 그 길이 열립니다.

지난 날, 완전히 망가졌던 나라가 교육혁명에 성공하여 선진국으로 변화된 예가 덴마크의 경우입니다.

덴마크 국민들은 전 세계 국민들 중에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몇 해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200년이 못되는 때에 덴마크는 그릇된 전쟁을 거듭한 끝에 나라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본래 덴마크는 지금의 스웨덴, 노르웨이까지 포함한 큰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전쟁을 벌이고 독일과 전쟁하는 등 거듭되는 전쟁에서 패전하여 국토는 빼앗기고 기름진 땅도 독일에 넘어가고 쓸모없는 황무지만 남았습니다.

나라 사정이 그렇게 되면 늘어나는 것이 두가지입니다.

도박과 다툼입니다. 젊은이들은 전쟁터에서 죽어나가고 나라 안에는 상이군인과 과부들과 고아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런 때에 교육혁명으로 나라를 일으키자고 부르짖은 선각자가 등장하였습니다. 그룬트비히 목사입니다.
 
나는 대학생 시절 한 때 장래에 그룬트비히가 될 것이냐, 아니면 키에르케고르가 될 것이냐를 두고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둘이 다 19세기 같은 시기에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룬트비히는 목사로서 희망을 잃고 있는 나라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던 사회개혁자였고 키에르케고르는 순수한 철학적 사유에 삶을 바쳐 주옥같은 저서를 남긴 철학자였습니다.

대구 계명대학에서 철학과에 다니던 나는 개신교의 목사가 되어 〈그룬트비히와 같이 사회와 교회의 개혁운동에 헌신할 것이냐?〉 아니면 모교에서 철학 교수로 남아 〈키에르케고르 같이 순수하게 철학적 사유의 세계에 헌신할 것이냐?〉를 고민한 것입니다.

결국은 목사가 되어 그룬트비히가 걸었던 길을 걷고는 있으나 그와 같은 사회개혁가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한 채로 목회자의 자리를 지키고는 있습니다.

덴마크는 원래는 스웨덴, 노르웨이를 포함한 넓은 지역을 통치하던 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쓸데없는 전쟁을 여러 번 일으켜 계속 패전함으로 국토는 좁아졌고 국력은 기울어졌습니다.

특히 프로이센과의 오랜 전쟁에서 패전한 1864년 이후로는 비옥한 땅은 전승국에 다 빼앗기고 북녘의 척박한 땅 조금만 남게 되었습니다. 철저하게 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철저하게 망하게 되어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된 것이 오히려 국운이 일어서게 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덴마크가 그렇게 재기할 수 있게 된 것은 국민들에게 바른 정신을 불어넣는 선각자가 등장하여 국민들의 혼을 깨우쳤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선각자가 시대정신을 올바르게 깨우치게 되면서 완전히 죽어가던 한 나라가 일어서게 된 것입니다.

그 인물이 바로 그룬트비히 목사입니다. 그룬트비히라는 한 목사의 설교가 한 국가와 국민의 역사를 어떻게 살릴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실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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