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패전으로 온 나라가 좌절에 빠져 있던 덴마크가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을 통하여 나라 전체에 활력을 불어 넣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변화가 열정의 설교자 그룬트비히 목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젊은 날의 좌절을 딛고 일어선 그룬트비히 목사는 40대 후반에 들어 국민들의 혼을 깨우는 설교자로 등장하였습니다.

그의 설교에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신뢰와 나라 사랑에 대한 열정이 넘쳤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 중에 한 초등학교 교사가 있었습니다.

크리스텐 콜이란 교사는 현직 교사가 아니라 전직 교사였습니다.

그는 공립학교에서 교사로 봉직하다가 관료적인 분위기에 실망하여 교사직을 사임한 후 수년간 방랑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그룬트비히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자신도 학생들의 영혼을 깨우는 교육에 재 헌신키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렇게 결심한 그는 벽촌의 한 물레방앗간을 빌려 학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학교가 덴마크를 살린 국민 고등학교 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 개교할 때 그의 기도 제목은 학생 15명을 보내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개교하는 날 정오까지 3명만 등록하였습니다.

실망한 그는 다시 숲으로 들어가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올 때 마차 소리가 나더니 학생 12명이 수레에서 내렸습니다.

그들이 사과하기를 오는 도중에 마차 바퀴가 빠져 늦게 되어 죄송하다고 인사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콜의 학교가 젊은이들의 혼을 깨우치는 학교로 발전하였습니다.

바로 교육혁명을 통한 덴마크 건설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 교육혁명이 그룬트비히라는 한 목사의 설교에서 시작되었음을 다시 언급합니다.

아울러 네덜란드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고자 합니다.

네덜란드는 애초에 장로교 교인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16세기 종교 개혁 운동이 일어나던 때에 존 칼빈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혁 운동을 지도하였습니다.

칼빈 선생은 개혁자이면서 성경학자였습니다.

그는 제네바 시에서 영적 지도자로 있으면서 매주 성경으로 사회개혁운동을 일으키는 원리를 가르쳤습니다.

그 시절 그의 성경 강의를 들은 사람들의 일단이 네덜란드로 가서 버려진 땅을 개척하여 세운 나라가 네덜란드입니다.

해수면보다 낮은 땅이어서 네덜란드입니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가 해운업으로 부강한 나라로 발전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네덜란드가 교육혁명으로 지금의 부강한 강소국의 기틀을 닦은 것은 아브라함 카이퍼란 장로교 목사면서 정치가였던 선각자의 공로입니다.

그가 네덜란드의 대통령이 되자 교육 개혁에 나라의 미래를 걸었습니다.

교육에 대한 성경적 기초를 확고히 하면서 그에 따르는 교육 제도를 마련하였습니다.

그의 교육 개혁은 초등학교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 그가 교육 제도의 기초를 확실히 다졌기에 네덜란드는 지금도 그가 세운 시스템으로 교육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대학 진학률이 25%가 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각자 자기 적성을 따라 취업합니다.

그렇게 되니 개인에게도 나라에도 낭비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무려 90%에 이릅니다.

그 점에서 우리는 네덜란드에서 배워야 합니다.

네덜란드가 그런 시스템을 만든 것이 아브라함 카이퍼 대통령의 공로입니다.

그는 목사면서 정치가였습니다.

1900년대 초에 대통령이 된 그는 다른 무엇보다 교육 혁신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초등교육 혁신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담임선생을 정하면 그 담임이 졸업할 때까지 바꾸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니 졸업반이 되면 선생님은 자신이 맡은 학생들의 모든 것을 파악하게 됩니다.

그래서 졸업하기 전에 부모와 만나 그 학생의 적성에 따라 진로를 정합니다.

지금 이 나라에 꼭 필요한 것이 교육혁명입니다.

그 일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에 굳이 혁명이란 말을 씁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똑똑하게 낳아서 멍청하게 기릅니다.

교육혁명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똑똑하게 낳은 자녀들을 똑똑하게 튼튼하게 바르게 기르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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