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 끊겼다’

애주가들이 과음한 다음날  전날 밤 일이 기억나지 않을 때 자주 하는 말이다.

의학 전문용어로는 '블랙아웃(blackout)'이다.

정신 의학계에선 음주량보다는 음주속도와 더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다.

다시말해 혈중알코올농도가 급격히 상승할 때 자주 발생해서 그렇다.

원인은 이렇지만 흔히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블랙아웃'이 술을 많이 마신 이후 일시적으로 기억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게 그것이다.

그러나 블랙아웃은 뇌구조에서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 저장소로 옮겨주는 해마가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것을 뜻한다.

즉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끊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필름 끊김 현상'이라는 표현은 이 때문에 등장했다.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저장된 기억이 없다는 뜻이다.

과음 때 뿐만이 아니다.

수술 시 전신마취를 할 때에도 겪게 된다.

그런가하면 중력가속도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롤러코스터를 탈 때 혹은 무중력 우주선 조종사, 전투기 파일럿 등도 이러한 현상을 겪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인은 다르지만 의미는 비슷한 경우가 산업계에도 종종 나타난다.

사람의 의식이 끊기듯 특정 지역에 일시적으로 벌어지는 대규모 정전사태도 블랙아웃이라 해서다.

전기 수요가 공급능력을 초과하는 이럴 경우 전력망 관리 시스템이 붕괴돼 전기 공급이 일시에 끊기면서 대규모 혼란도 초래한다.

1997년 7월 13일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블랙아웃이 대표적이다.

이날 블랙아웃으로 뉴욕이 무법천지로 변하면서 시민들은 약 25시간 동안 ‘공포의 밤’을 보냈다.

암흑을 틈 타 대규모 약탈과 방화가 이어지면서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

1700개 상점이 폭도들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3000여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3억달러가 넘는 경제적 피해가 났다.

우리나라도 2011년 9월 15일 예고없는 정전사태를 경험했다.

전국적 블랙아웃을 예방하기 위해 당국이 지역별로 돌아가며 전력 공급을 일시 중단한 결과였다.

10년이 지난 올 여름에도 '블랙아웃'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 걱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에너지 공급망을 뒤흔들어 세계가 전력난을 겪고 있는 와중에 벌써부터 전력의 과사용으로 공급부족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과소비 국가다. 1인당 전력 소비량은 2020년 기준 1만1082㎾h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개국 중 8위다.

OECD 평균보다 1.4배, 세계 평균보다는 3.4배 높은 수치다.

이런 가운데 지난 5년간 미뤄온 전기료마저 인상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일찍 열대야가 찾아온 요즘 전국적 블랙아웃이란 재앙을 막는 것은 물론 무거워지는 전기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각자가 일상의 절전법을 실천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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