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친구이자 (사)화성연구회 회원들로서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고 있는 ㅈ과 ㄱ이 해외여행에서 돌아왔다. 남아 있던 이들은 ‘무사귀환을 축하한다’며, 떠났다 돌아온 자들은 ‘우리만 다녀와서 미안하다’며 자연스럽게 마음이 맞는 술자리를 가졌다.

물론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일이 없어도 반드시 이유를 만들어내어 술자리를 성사시키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게다가 요즘 웬만한 자리면 모두 나가려고 노력한다. 나이 들고 나서 불러주는데도 두세 번 안 나가면 다음부터는 아예 제외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또 있다. 늙으면 입을 다물고 주머니를 열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입만 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들도 부르기엔 껄끄럽다. 남의 험담만 하는 사람, 늘 부정적인 사람과도 점점 거리를 두게 된다.

어쨌거나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들과의 만남은 유쾌했다. 비록 나는 가지 못했을지언정 그들이 가져온 보드카와 와인을 맛보며 이야기를 듣고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길에 동행한 듯했다.

ㄱ은 딸과 함께 남부 프랑스에 다녀왔다. 유럽 대륙을 뒤덮은 폭염으로 고생했지만 천성이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걸음걸음이 즐거웠고 먹었던 모든 것이 맛있었다고 했다.

북유럽을 다녀온 ㅈ은 눈과 비를 한꺼번에 겪는 등 볼 것을 다 봤다고 한다. 평소에도 가보고 싶다고 염불을 하던 북유럽을 다녀왔으므로 얼굴에 만족감이 그득하다.

그런데 PCR검사를 세 번이나 해야 했단다. 출국 전 한번, 현지에서 한번, 돌아와서 다시 한 번...사실은 나도 동남아시아 정도는 가고 싶었다. 몇 달 전 ㅇ박사가 베트남 하노이에 함께 가자고 꼬드겼을 때 갈등이 심했다. 결국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포기하긴 했지만, 뒤에 관광객들이 없어 가는 곳마다 국빈대접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는 후회했다.

그랬긴 했어도 아직은 해외여행이 내키지 않는다. 절차의 번잡스러움을 싫어하는 성격 탓이다. 2019년 중국과 우즈베키스탄을 마지막으로 중지된 나의 해외여행은 아무래도 코로나19가 끝나야 재개될 듯하다. 과연 이 상황이 종료되긴 할 것인가.

최근 우리 가족들이 묵었던 강원도 횡성의 펜션. (사진=김우영 필자)
최근 우리 가족들이 묵었던 강원도 횡성의 펜션. (사진=김우영 필자)

지난 달 아내와 아들, 딸, 시집간 딸네 식구와 반려견, 예비 사위까지 대가족이 강원도 횡성 산골짜기에 있는 펜션을 얻어 하룻밤 지내고 돌아왔다. 넓은 잔디정원과 과일나무들, 바비큐 시설, 반려견 시설까지 잘 갖춰진 독채였는데 우리 가족만 사용할 수 있어서 편했다.

사갖고 간 고기와 소세지, 가리비 등을 구워먹으며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개도 넓은 잔디정원에서 그야말로 개 뛰듯이 뛰놀았다.

찜통처럼 더운 날씨였지만 산골짜기의 밤은 서늘했다. 비록 외국이나 유명 피서지는 아니었지만 만족했다.

같은 달 (사)화성연구회의 답사도 다녀왔다. 전북 부안에서 이매창의 시혼에 젖고 개암사, 내소사에서 영혼을 정화시켰다. 바지락 죽과 갯것들, 젓갈 백반에 감탄했다. 밤, 숙소에서는 ‘전국 지킴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자는 의지를 다지는 작은 연회가 벌어졌다.

아, 그렇구나. 연초엔 셋째 동생 환갑기념으로 2박3일 제주도 여행도 했었지.

그래, 이만하면 올해 휴가는 됐다. 이 정도면 절대 서운하지 않다. 비록 외국여행은 못했지만 틈날 때 국내 유적지 답사를 다녀오면 된다. 아무렴, 갈 곳이 없을까. 시간과 돈이 없지.

오늘은 우선 광교산 창성사지부터 가보자. 한동안 가보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오르는 코스는 걱정이 없는데 내려오는 경사진 길이나 계단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게다.

천천히, 그래 아주 천천히 내려오면 된다. 크게 바쁜 일도 없지 않은가. 오는 길 동네 아우가 운영하는 보리밥집에 들러 ‘휴동 막걸리’ 한 사발하면 그게 휴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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