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 수원 이전행사 모습.
1967년 6월 23일 경기도청 수원 이전행사 모습. (사진=경기도 멀티미디어)

수원이 경기도 남부권의 중심도시이자 상업도시가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1963년 경기도청을 유치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경기도청은 서울 세종로에 있어 경기도로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수원과 인천, 안양에서 경기도청 유치전을 벌였다. 특히 수원과 인천은 사활을 걸고 경기도청 유치 활동을 전개했다. 

이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폐허가 된 지역을 재건하는데 큰 요소가 됨은 물론 도청소재지라는 지위를 얻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1963년 경기도청 유치가 결정됐다. 당시 연무동에 최초의 공설운동장이 있었는데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촌이 형성됨에 따라 1956년에 팔달산 자락으로 공설운동장을 옮겼다. 이어 1972년 조원동으로 공설운동장을 이전했다. 

도청이 유치되자 도 단위기관들이 수원에 자리잡았다. 1963년 수원시 인구는 11만8237명이었다. 도청이 이전한 1967년 수원시 인구는 13만1031명으로 증가했다.

도청 수원유치 이후 여러 분야에서 발전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이미 정부는 1962년에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했다. 그리고 ‘구법령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돼 일제강점기에 제정된 각종 법령 정비에 들어갔다.
 
이 때 ‘시장규칙’이 폐지되고 새로이 ‘시장법’이 제정됐다. 이 법률에서는 기존의 시장규칙에 있던 경찰의 단속 조항을 삭제하고, 별도의 법률로 중앙도매시장법과 가축시장법이 제정됨에 따라 이들 시장조항이 삭제됐다. 이후 1960년대 수원의 시장은 큰 변화는 없었다. 

1963년 도청유치 이전, 수원에는 이미 영동시장과 매산시장, 가축시장, 신탄시장, 제1수원천시장, 제2수원천시장이 자리 잡았다. 1957년에는 시민백화점이 문을 열었고, 1961년 북수동 274번지에 청과물도매시장이 들어섰다. 

1969년 정부는 유통근대화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추진했다. 이 계획은 5일장 중심이던 기존 유통체계를 근대화하기 위해 상설시장과 연쇄점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유통수단의 조직 및 협업화’, ‘경영과 시설의 현대화’, ‘유통금융의 원활화’, ‘유통관계 종사자 및 소비자의 자질향상’, ‘정부 기능 강화’ 등을 추진방향으로 설정했다. 

영동시장 신축기공식 모습. (사진=수원시사)
영동시장 신축 기공식 모습. (사진=수원시사)

이처럼 유통근대화 추진결과 상설시장이 증가하는 한편, 기존시장의 시설정비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됐다. 당시 농협의 연쇄점과 새마을 구판장, 소매상의 연쇄화가 진행됐다. 이 시기 1953년 화재로 재건축된 영동시장이 시장현대화 사업으로 새롭게 건물을 신축해 개장하게 된다. 

1972년 경향신문 영동시장 분양광고. (자료=경향신문)
1972년 경향신문 영동시장 분양광고. (자료=경향신문)

경향신문 1972년 8월 28일자 광고에 영동시장주식회사 명의의 ‘점포 임대 개시! 드디어 수원영동시장 신축개점 박두!’ 라는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1975년에는 수여선이 폐선됨에 따라 화성역 부지에 수원청과물 도매시장이 문을 열었다. 

1977년 개점한 삼원백화점. 팔달문 남쪽 정조로변에 위치했다. (사진=수원시사)
1977년 개점한 삼원백화점. 팔달문 남쪽 정조로변에 위치했다. (사진=수원시사)

이후 1966년 지동시장, 1971년 매교시장, 1977년 화서시장이 문을 열었다. 또한 1957년 시민백화점을 시작으로 1974년 크로바백화점이 개점했다. 이어 1977년에는 남문백화점, 1980년에는 수원백화점, 1977년에는 삼원백화점이 문을 열어 수원은 경기남부의 유통 중심지가 됐다. 

1980년대에 들어서 유통시장 개방화 정책에 따라 외국의 유통업체들이 진출하자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 재래시장 지원을 추진해 나갔다. 당시 수원시는 기존의 시가지로는 한계에 접어들자 외곽지역 개발에 나섰고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전통시장 또한 인구 증가에 비례해 크게 늘어났다. 

당시 시장부지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일정 역할을 담당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에서 시장부지를 단지별로 확보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외곽지역인 관계로 시장형성이 늦어져 나대지로 오래도록 남기도 했다. 그 와중에서도 제대로 자리 잡은 시장은 영동시장, 북수원시장, 화서시장, 권선종합시장으로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현재 수원의 전통시장은 22개소다. 장안구에 북수원시장, 조원시장, 정자시장, 장안문거북시장, 반딧불이연무시장 등 5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권선구에는 권선종합시장과 수원가구거리상점가 등 2개소가 있다. 영통구는 구매탄시장 1개소가 있을 뿐이다. 수원의 전통시장 22곳 중 팔달구에 14개소가 운집돼 있다. 

팔달문 주변에 밀집한 전통시장 모습. 하단에 구천동 공구시장과 남문로데오시장의 일부모습이 보이고 나머지 6개시장이 운집해있는 모습이다. (사진=수원시 항공사진서비스)
팔달문 주변에 밀집한 전통시장 모습. 하단에 구천동 공구시장과 남문로데오시장의 일부 모습이 보이고 나머지 6개시장이 운집해있는 모습이다. (사진=수원시 항공사진서비스)

그중에서 팔달문 주변에 영동시장, 시민상가시장, 팔달문시장, 남문패션1번가시장, 남문로데오시장, 못골종합시장, 미나리광시장, 구천동공구시장 등 8개가 밀집돼 있다. 그리고 수원역 주변에 매산시장과 역전지하상가시장, 매산로테마거리상점가가 있다. 외곽으로는 화서시장이 있다. 

이는 화성건설 당시 신읍 활성화 방편으로 시작된 장시(場市)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1963년 경기도청의 수원유치로 시작된 삼성전자, 선경직물, 선경합섬, 연초제조창, 한일합섬, 대한방직 등과 같은 산업시설이 유치됨에 따른 시장 수요의 확대에 따른 것이었다. 

또 서울농대, 성균관대학, 경기대학, 아주대학, 동남보건대학, 수원여자대학 등의 수원입지와 수원 인근에 많은 대학이 자리잡으면서 유동인구가 증가한 것도 수원의 상권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외국의 유통시장이 진출하자 전통시장이 위기에 처하게 되면서 정부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서 전통시장으로 인정하는 기준을 ‘도매업ㆍ소매업 또는 용역업을 영위하는 점포의 수가 50개 이상인 곳을 말한다’고 규정함에 따라 노선상가들이 전통시장으로 등록했다.

팔달문 일원의 시장은 크게 보면 1개의 단일 시장이지만 기존의 영동시장, 시민상가시장과 차별화해 6개 시장이 전통시장으로 등록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 이후 대형유통점이 소도시까지 진출해 전통시장과 경쟁하고 있다. 오랜 역사만큼 이어온 전통시장이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시장이 돼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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