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충영이 만난사람(4)] 의료인과 봉사자의 삶을 사는 김영덕 화성 제일요양병원장

> - 단순 의료행위 넘어 인술 펼치는 '참의료인' 칭송 자자
> - 회원 권익 대변하고 발전 도모하는 대한곡물협회 지도자
> -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동네 아저씨로, 어른으로 살고 싶어”

- 매체: 수원일보 — 수원·화성·용인 경기남부 뉴스 · 1989년 창간 37년, 경기도 제1호 인터넷신문(등록번호 경기 아 00001)
- 기자: 김충영 논설위원
- 발행: 2024-09-06T06:00:00+09:00 · 수정: 2024.09.09 08:00
- 섹션: 사람들 > 김충영이 만난 사람
- 원문(캐노니컬): https://www.suwonilbo.kr/news/articleView.html?idxno=306509
- 인용 표기: 수원일보, “[김충영이 만난사람(4)] 의료인과 봉사자의 삶을 사는 김영덕 화성 제일요양병원장”, 2024-09-06, https://www.suwonilbo.kr/news/articleView.html?idxno=306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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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김충영 논설위원>**

(사진: 김영덕 화성 제일요양병원장. (사진=수원일보))

(사진: 김영덕 화성 제일요양병원장. (사진=수원일보))

김영덕 화성 제일요양병원장(대한곡물협회장)은 의료인과 봉사자의 삶을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다.

김 원장은 1962년 경기도 이천에서 3남매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친이 서울에서 공직생활을 하게 되자 서울로 이주해 자양초교, 성수중, 한영고를 졸업했다. 어려서는 사관학교에 진학해 직업군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체력이 따르지 않았다.

부모님은 의사가 돼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바른 사람이 되라고 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원광대 의대에 진학했다. 이어 1994년 인하대 의대에서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어 부모님이 바랬던 정형외과의사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의사로서 첫발을 디딘 곳은 1994년 평택 성심병원에서 정형외과 과장으로 시작했다.

이어 △오산 서울병원 정형외과 과장 △서울 제성병원 정형외과 과장 △안양 선진병원 정형외과 과장을 하면서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 외래 교수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 외래 교수를 병행했다.

2005년에는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화성 병점에서 태안정형외과를 개업, 8년여 동안 24시간 365일 진료체계로 운영을 하면서 화성과 오산, 수원 등지의 응급환자를 진료했다.

그는 나이를 먹으면서 의료사회에서 회자되는 말이 새삼 생각났다고 한다.

‘소의’(小醫)는 환자 고치는 사람, ‘중의’(中醫)는 사회를 고치는 사람, ‘대의’(大醫)는 나라를 고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 때 그는 '의사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고심끝에 소의(小醫)와 중의(中醫)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운영해온 태안정형외과로는 중의(中醫)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고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화성 제일요양병원’으로 개명을 하고 요양병원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다소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고 그 시간을 봉사를 겸한 의료 활동에 할애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현재 그는 △화성시 요양원 촉탁의 △방문간호지시서 발급의 △화성시 경찰서 시체검안 촉탁의 △화성시 의료나눔봉사단장 등으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다 '근로복지공단 산재 자문의’로도 봉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면, '요양원 촉탁의'는 의사가 없는 요양원을 방문해 노인들을 진료하는 의료행위로 현재 ‘화성시 요양원 촉탁의 협의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두 번째는 ‘방문의료의’ 활동이다. 방문의는 집에서 요양하는 환자들의 자택을 방문해 진료하고 방문간호진시서를 발행하는 행위로 이를 통해 간호사들이 방문간호를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화성시 경찰서 시체검안 촉탁의’ 활동이다. 화성시민들이 병사, 사고사, 자살 등으로 사망할 경우 시체검안을 통해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는 의료행위로, 한 달에 40~50건에 달하고 있다.

네 번째로 화성지역의 형편이 어려운 다문화 외국인을 진료하기 위해 화성시 소재 6개 병원이 연합해 ‘화성시 의료나눔 봉사단’을 결성하고 봉사단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의 봉사에 대한 열정과 열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부친이 운영하던 가업을 물려받게 되면서 곡물협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이후 2012년 비영리단체인 사단법인 대한곡물협회 경기지회장에 당선된 후 줄곧 지회장을 맡아왔다. 급기야 올해 3월엔 전국 회장인 대한곡물협회 회장에 입후보해 선거 1차 투표에서 유효투표수의 과반수 이상을 득표, 제66기 회장으로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이는 1954년 협회 설립이후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수도권 출신 회장시대를 연 것이다.

그래서 의사로서, 봉사자로서, 전국 단체장으로서 몸이 10개라도 부족하고, 24시간도 모자랄만큼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 김 회장을 주변인들은 '홍길동'이라고 부른다.

(사진: 김영덕 원장이 김충영 본보 논설위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수원일보))

(사진: 김영덕 원장이 김충영 본보 논설위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수원일보))

**<다음은 김영덕 원장과의 일문일답>**

**▲ 사단법인 대한곡물협회는 어떤 단체인지?**

- 양곡도정업(양곡도정매매업 포함)과 양곡보관업, 미곡종합처리업의 건전한 발전과 회원 복리증진 도모, 국가 양정정책 수행에 적극 기여함을 목적으로, 민법 제 32조에 의거해 농림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지난 1954년 2월 12일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 단체다.

우리 협회는 정부양곡(나라미)을 도정해 군·관수용, 학교급식용, 기초생활수급자용, 대북지원용, 구호용, 가공식품용 쌀을 공급한다. 정부양곡 도정업체 115개소가 정부에서 쌀 생산농가로부터 매입한 벼와 수입현미 등 정부양곡을 보관하는 정부양곡보관창고 659개소, 그리고 쌀 생산농가로부터 벼를 수집해 건조 · 보관 · 가공 · 포장 · 유통 등 과정을 일괄 처리하는 미곡종합처리장 8개소의 회원업체들로 구성돼 있다.

**▲곡물협회와의 인연은?**

- 부친이 1980년 초 서울시에서 공직생활을 마친 후 노후 대책으로 화성시 능리에 ‘대영창고’를 건립, 정부양곡보관업을 시작함으로써 곡물협회원이 됐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부친이 운영하던 가업을 물려받게 되면서 곡물협회와 인연을 맺게 됐다. 2012년 ‘(사)대한곡물협회 경기지회장’에 선임돼 활동하던 중 회원들의 권유로 ‘(사)대한곡물협회장’에 입후보하게 됐고 지난 3월 21일 협회장 선거에서 회원들의 많은 지지로 당선되게 됐다.

**▲곡물협회장 취임 때 대표적인 공약사항은 어떤 것이었는가?**

- 회원들의 권익보호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회원들의 공장 및 창고의 시설개선과 양곡도정, 보관기술 향상을 위한 연구 및 지도에 몸을 아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미곡유통 정보수집 및 홍보와 미곡종합처리장의 설치, 운영지도 △미곡의 도정, 매매와 보관조작에 필요한 원료 및 기자재의 공동구매 및 수입알선 △사업자금의 지원 및 융자알선 △회원의 대정부 계약에 업종별로 연대보증 △회원이 생산한 제품의 판매대행 △정부관리양곡의 품질 우수성 입증 △도정공장 및 보관창고의 시설현대화 지속 추진 △정책보조금 지원방안 모색 등을 제시했다.

(사진: 지난 3월 21일 제66기 대한곡물협회 회장에 당선된 김영덕 회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곡물협회))

(사진: 지난 3월 21일 제66기 대한곡물협회 회장에 당선된 김영덕 회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곡물협회))

**▲지역에서 어떤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지?**

- 봉사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내가 이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내세우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굳이 밝힌다면 화성시 자원봉사센터 이사, 사회적 공헌기업인 협의회 감사, 동탄경찰서 경찰발전협의회 수석부회장, 화성시 병점1동 자율방범순찰대 자문위원, 동화성세무서 세정협의회 회원, 경기도체육회 이사, 화성시 체육회 복싱협회장, 화성시 기배동 체육진흥회장, 화성시 진안동 의용소방대 반장 등을 맡아 일해오고 있는데, 좀 창피하다.

**▲구체적으로 기부한 봉사실적은?**

- 아마 1년에 몇 천 만원 정도는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밝히지 않겠다.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 의사 초년시절 지인으로부터 좋은 의료시설을 값싸게 구매할 수 있다고 해 믿고 투자했는데 결국 실체가 없는 것에 투자함으로써 부친 재산의 절반을 날린 일이 있었다. 이후부터는 땀 흘려 번 돈만 내 돈이라는 신념으로 성실하게 살아오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큰 계획은 없다. 나를 필요로 하는 데에는 어디든 무엇이든 힘이 미치는 한도까지는 다 하려고 한다. 여기에다 한마디로 '동네 아저씨'로, 나이가 더 들면 '동네 어른'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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