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500만원에 달하는 2학기 등록금 마련에 마음고생이 크다. 아르바이트에 목을 매고 있지만 비싼 학비에 경제 불황이 겹쳐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게다가 정부는 여전히 고금리 학자금 대출을 고집하고 있고 최근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 인상으로 이자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대학생들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의 가슴을 더욱 죄게 하는 것은 ‘돈이 없어 공부 못 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올해부터 도입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든든장학금)가 오히려 학생들의 외면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부의 1학기 대출집계가 이를 반영하듯 전체 대출 39만5387건 중 ICL은 10만9426건으로 28%에 그쳤다. 수혜자가 7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당초 예측보다 턱없이 적다. 이유는 높은 금리 때문이다.

ICL 금리는 5.7%에 복리가 붙는다. 정부의 주요 정책 금리 3~4%보다 훨씬 높을 뿐만 아니라 ICL을 시행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가장 높다. 이뿐만 아니다. 대학 재학 중 군대에 갈 경우에도 이자를 물리고 취업 후 상환 시점부터 복리가 적용된다. 이렇게 되면 졸업 후 갚아야 할 돈은 원금의 3~4배로 늘어난다. 대학생을 위한 대출제도가 신종 고리대출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다.

지난 1월 고금리 학자금 문제를 둘러싸고 대학생들과 시민단체들은 잇달아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학자금 대출제도도 일종의 ‘금융상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이모(30)씨는 올해 전문대를 입학했다. 그런데 등록금이 400만원 넘는다는 소식에 입이 벌어졌다. 공장을 다니며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이씨에겐 생활비 부담도 빠듯해 취업 후 학자금 상환 대출을 알아봤으나 비싼 이자 때문에 학업을 계속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이런 처지의 학생들이 이씨 뿐만은 아닐 것이다.

경기도가 최근 학자금 대출제도의 고금리를 인식한 탓인지 ‘대학생 학자금 이자지원 및 국가 인재육성 지원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지만, 애초 이자율을 높게 책정한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대학생 학자금 대출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얘기다.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친서민 중도실용’의 등록금 정책이 도입 단계부터 빗나가고 있어 안타깝다. 까다로운 대출조건을 완화하고 학생들의 어려운 현실을 더욱 충실히 살피지 못한 졸속이 아닐 수 없다. ICL 금리가 높게 책정된 것은 재원 조달 방식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 투입 없이 민간에서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조달한다. 시중 금리보다 낮추면 재원이 고갈돼 내릴 수 없다는 이유다. 이것이 대학생을 위한 진정한 학자금 대출제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거나 재원조달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ICL은 저소득층의 학비 부담 경감을 위해 현 정부가 밀어붙인 교육복지 정책이다. 서민을 위한다는 취지에 맞게 서민들의 애환을 충분히 들어보고 필요조건을 갖춰야 할 것이다.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면 국가재정 부담만 주장할 게 아니라 근본적 수정을 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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