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에 가격표시를 하지 않는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시행 한 달이 지나도록 정착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비자에게는 혼선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홍보부족이 겉돌고 있는 이유다. 가격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시행된 제도가 일부에서는 되레 가격을 올려 파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오픈프라이스란 제조업체가 판매가격을 정하지 않고 최종 판매업체가 실제 판매가격을 결정하고 표시하는 제도다.

지난 1999년부터 텔레비전, 세탁기 등 12개 품목에 대해 권장소비자가격 표시가 금지돼 왔다. 제도 도입 이후 제조업체는 가격을 편법으로 인상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1일부터 라면과 과자, 아이스크림 등 동네 구멍가게에서 구입할 수 있는 식품들에 대해 적용된 오픈프라이스 제도(자율가격표시제)가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원지역 판매자가 제도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해 혼선을 빚고 있다.

실제 수원지역 슈퍼마켓과 편의점 등의 일부 상인들은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시행된 것에 대해 모르고 있었고, 알고 있는 상인들도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채 가격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실태는 상점 규모가 작을수록 더욱 두드러졌다. 8년째 자그마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팔달구 매산동의 이모(61)씨는 “지난달 보도를 통해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당분간은 받은 물건에 20%를 더해 판매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처럼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정착되지 못해 판매자들이 혼선을 빚는 이유는 시행부처와 지자체들이 구체적인 관련 지침이 전달되지 않고 있다 보니 홍보가 될 리 없다. 시행 초기에는 판매업자들에 대한 교유 및 점검을 통해 정착을 유도해야 하지만 도와 시에서는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도 관계자는 “지난해 가을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개정되기 전에 ‘가격표시제 실시요령’이라는 매뉴얼을 지경부로부터 받았지만 지난달 확대 실시에 대해서는 따로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판매자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특정 지침이 없어 31개 시·군에도 시행 점검 및 교육과 관련해 따로 공문을 발송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픈프라이스 제도를 시행하고도 이처럼 초기 대응에 ‘나 몰라’ 식이 되다 보니 정착의 길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오픈프라이스 제도의 긍정적 측면도 많지 않아 보인다. 소비자들이 가게마다 차이가 있는 가격을 확인하고 싼 곳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긴 하다. 그렇더라도 물건 하나에 100~200원 차이 혹은 몇 십원의 가격 차이 때문에 거리가 먼 가게를 찾아가야 한다면 소비자로서는 불편만 가중되는 셈이다. 구입물품 수가 적어 마진도 높지 않은 소매점들은 대형 유통매장에 비해 불리한 점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거주지역 인근에 가게가 많지 않다면 오히려 더 높은 가격에 구입할 수밖에 없다는 맹점도 드러났다. 서민이 많이 찾는 식품들에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시행됐지만, 일부 주부들은 과거보다 가격이 오른 경우가 많다고 불만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유통업체들끼리 가격을 담합해 오히려 가격을 올려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가격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가격관련 통계 인프라스트럭처를 확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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