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치르고 나자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홀가분했다.

그러나 박지원에게 생각이 미치면 더없이 우울했다.

더군다나 얼마 전에 유배를 떠난 유언호는 박지원의 아주 친한 벗이었다.

   
낙향을 생각하고 있었던 박지원은 충청도 단양과 영동을 마음에 두고 있으며, 서울 집을 팔아 그곳에 논밭을 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어 해 사이 백동수에게 좋지 않은 일이 너무나 많이 일어났다.

잠시라도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박지원에게 이 참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기다렸다는 듯 박지원도 찬성했다.
 
두 사람은 지도를 펴들고, 기왕 나서는 길이니 낙향할 곳도 찾아볼 겸 남북을 두루 돌아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려면 경비가 만만치 않을 터, 하지만 궁하면 통하는 법이다.

백동수는 고을 수령과 변장으로 재직 중인 벗들, 그동안 여행하며 사귄 팔도의 지인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백동수는 늘 타고 다니던 말이 있었지만 박지원은 나귀조차 없었다.

말 한 필을 세 내리면 하루에 3전7분이 들었다.

박지원은 그만한 형편도 못되었기에 백동수가 여러 필의 말을 갖고 있는 친구에게 말을 빌렸다.

1771년 음력 3월24일, 무과에 급제한 지 보름도 채 안 된 백동수는 이른 새벽 사당에 나가 고하고 부모에게 인사를 드렸다.

마침 황주에 볼일이 있던 이덕무도 개성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이덕무는 황해도 병마절도사로 있는 삼종형 이경무의 아들 광섭이 식년무과에 급제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나서는 길이었다.

백동수는 청지기 김오복을 데리고 박지원과 이덕무가 살고 있는 대사동으로 향했다.

김오복에게 박지원의 시중을 들게 할 참이었다.

세 사람이 말을 타고 서울을 벗어나니, 산과 들은 온통 연두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첫 목적지인 개성에 도착했다.

500년 동안 고려 수도로 번영을 누린 도읍지답게 유적이 즐비했다.

성터, 만월대, 첨성대, 성균관, 선죽교 등 예 사연을 간직한 유적과 유물을 둘러본 다음 천마산에 올랐다.

명기 황진이가 송도 삼절의 하나로 꼽았던 박연폭포를 비롯하여 대흥사, 개성사, 원통사 같은 고찰이 개성의 진산 천마산의 너른 품 안에 안겨 있었다.

여기서 이덕무와 헤어져야 했다.

백동수는 만월대에 술자리를 마련했다.

이별의 시를 읊는 이덕무의 청아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번화하던 옛 도읍엔 풀만 곱게 무성한데

손가락 퉁기는 사이 오백 년이 흘렀구나.

부서진 벽돌 조각 주우며 가죽 신 끌던 소리를 생각하고

무너진 주초 미루어 기둥 둘레 헤아려보네.

구름 돌아가고 물 흐름은 영웅들의 기상이라면

꽃지고 새 슬퍼 움은 나그네의 시름이어라.

어찌 말하랴. 흥망이 나에게 깊이 관계되어

이별의 정 때문에 눈물이 비 오듯 흐르는 것을.

이덕무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 것은 벗들과 잠시 헤어지기 때문만이 아니라 서울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여행 길에 나선 두 벗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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