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고등학교 3학년들이 쓰는 6차 교육 과정의 국어 교과서에 보면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의 ‘적벽부’라는 글이 실려 있다.

그리고 같은 국어 교과서에 또 다른 곳을 보면 정약용의 ‘기예론’이라는 글이 있다. 그 글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옛날, 소식(蘇軾)은 경적(經籍)을 고려에 하사하지 말고 아울러 구입해 가는 것도 금지하도록 주청(奏請)하면서 “이적(夷狄)이 글을 읽으면 그 지식이 진보될 것이다.” 했으니, 어찌 그리도 마음이 좁고 인정이 적었던가.

위 글에서 말하는 소식은 소동파를 일컫는 것이다. 그리고 ‘이적’이라 함은 오랑캐를 뜻하는 것인데, 우리 나라 다시 말해서 고려를 말하는 것이다.

정약용은 소동파가 우리 민족을 무시하고 자국의 문화에 대해 폐쇄적인 태도를 보이려고 했던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이다.

소동파는 위와 같은 말뿐 아니라 고려가 송나라에 보낸 국서(國書)에 송나라 연호를 쓰지 않았다고 눈을 부릅뜨며 물리친 적도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우리 조상들은 소동파의 ‘적벽부’를 마치 만고불변의 명문이나 되는 듯이 떠받들어 왔고, 드디어는 우리 나라에서 단 한 종류뿐인 고등하교 국어 교과서에까지 실었다.

물론 ‘적벽부’가 뛰어난 글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인정한 바이다. 하지만 글은 그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 글이 뛰어나다면 다양한 종류의 문학 교과서에 실어서 그 글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하게 하면 그만이다.

단 한 종류로 국가가 제한하고 있는 국정 교과서에 굳이 그것을 실어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를 무시하는 언행을 공공연하게 한 사람조차 떠받들어야 할 만큼 ‘관대한’ 민족이란 말인가?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미8군 영안소 부소장 맥팔랜드라는 자가 소재 파악이 되지 않아서 2년 6개월이 넘도록 재판이 열리지 못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여전히 근무지에 근무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 9월 초에 담당 재판부에서는 관할 경찰서인 용산 경찰서에 소재지를 탐지해달라는 촉탁을 했으나, 용산 경찰서는 소재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회신을 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물론 경찰의 고충도 모르는 바 아니다. 미군이 협조하지 않는 상태에서 미군이나 군속을 우리 경찰이 소재 확인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안 맥팔랜드의 소재를 추적해 온 녹색연합의 말에 따르면 그의 소재를 확인하고 법원에 제보했는데도 달라진 게 없었다고 한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답은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이른바 지도층이라는 사람들 대부분이 ‘민족 자존’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자라나는 세대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자존’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가게 된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자기 나라를 침략한 군대의 장교 출신을 존경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세력을 행사하는 곳은 없다.

자기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항변도 못하고, 자기 가족을 욕되게 하는 사람에게 대응을 못하고, 자기 민족을 짓밟는 자들에게 항거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살아있는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기성세대들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자라나는 세대들이라도 ‘자존’을 갖고 살아가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구구한 변명을 들이밀지 말고 모든 일을 그 기준에 따라 해야 할 일이다. 이라크 파병 문제만 해도 그렇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이 자유세계를 위한 ‘의로운 행동’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다. 그런 사람들은 논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전쟁이 ‘의롭지 못한 전쟁’이지만,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파병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파병이 국가에 이익이 되는지도 따져 봐야 할 문제이지만, 그것보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자존’보다 소중한 ‘국익’은 없다는 것이다.

‘자존’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돈을 벌고 권력을 차지해도 헛사는 것이 듯이, 민족 구성원 속에 ‘민족 자존’의 생각이 확고하게 심어지지 못할 때 그 민족의 앞날은 암담할 뿐이다.

이제 우리도 눈앞의 이익보다 ‘자존’을 지상의 가치로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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