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수탈 앞잡이 동양척식회사에 폭탄 던진 나석주
조선인 잡아 가두던 종로경찰서에 폭탄 던진 김상옥
상해 홍구공원 대 쾌거 윤봉길
도쿄 황거 앞에서 폭탄 던진 김지섭 이봉창 의사

제국주의 무모한 만행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여자의 몸 뒤질세라
치마폭에 거사 이룰 폭탄 몰래 숨겨 들여와
신의주 철도호텔, 의천경찰서, 평남도청에 던진 그 용기

꽃다운 스물세 살 임신부
폭탄 들어 평남도청 향해 힘껏 던지던 날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라고 온 천지가 부들부들 떨었다네

갓 낳은 핏덩이 끌어안고
왜경에 잡혀 철창 속에 갇혀서도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게 무슨 죄냐고
쩌렁쩌렁 호령하던 열사

출옥 후 핏덩이와 간 곳 알 수 없지만
어느 이름 모를 곳에서 또
힘차게 대한독립만세 외치며
그 투지 불태웠을 테다 불태웠을 테다.

 

▲ 여자폭탄범이란 기사로 대서특필한 1921.5.2 동아일보

● 안경신(安敬信, 1877~미상)

“독립투쟁가가 많이 있고 여성투쟁가도 수없이 있다. 그러나 안경신 같이 시종일관 무력적 투쟁에 앞장서서 강렬한 폭음과 함께 살고 죽겠다는 야멸찬 친구는 처음 보았다” 이는 안경신의 동지 최매지(崔梅智)가 한 말이다.

1920년 8월 3일 밤 고요한 평양시내에 군중이 혼비백산할 만한 굉음이 울렸는데 다름 아닌 평남도청이 폭발물에 의해 파괴된 것이었다. 이 폭탄을 던진 주인공은 당당하게도 스물세 살의 젊은 여성 안경신(安敬信)이었다. 그가 왜 폭탄을 던졌는지 들어보자.

“3·1 만세운동 때도 참여하였지만 그때는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나는 일제 침략자를 놀라게 해서 그들을 섬나라로 철수시키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곧 무력적인 응징방법으로 투탄(投彈), 자살(刺殺), 사살(射殺) 같은 1회적 효과가 주효할 것으로 믿고 있다.”라고  ‘비밀결사대한애국부인회 검거’시에 안경신은 일본 고등경찰에게 그렇게 당당히 말했다. (1920.11.4, 高警 제33902호)

안경신은 대한광복군총영에 가담하였는데 이 조직은 중국 동삼성 지역에 산재해 있는 각종 항일투쟁 단체를 망라하여 통합한 전투 단체로서 1920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이 단체의 투쟁목표는 일제의 착취기관, 정책수행기관 폭파와 침략의 수뇌부 인사 사살이었다.

1920년 8월 미국 상하의원단 100여 명이 동양 시찰차 한국도 통과한다는 귀중한 정보가 광복군 총영에 입수됐다. 총영에서는 조국 독립에 관한 영문 진정서 43통을 작성, 임시정부를 통해 제출케 한 뒤 국내의 일제 통치기구들을 파괴하고 일본 관헌들을 암살하여 세계의 여론을 환기시킬 계획을 세웠다.

이에 7월 25일 결사대를 3대로 편성해 폭탄, 권총 및 전단(4만장)을 배포하였는데 결사대원은 안경신을 비롯해 임용일, 정일복, 박경구, 김영철 등 16명이었다. 평양을 담당한 안경신은 대원들과 7월 15일 총영을 출발, 국내로 잠입하던 중 안주에서 검문 검색하는 일경 1명을 사살하고 도보로 평양에 입성했다.

안경신은 단독으로 평남도청 (8월 3일) 그리고 다른 동지와 신의주 철도호텔(8월 5일), 의천경찰서(9월 1일) 등에 폭탄을 던졌는데 특히 8월 3일 저녁 9시 50분경 투척한 평남도청 폭파사건은 이웃에 있는 경찰서 건물이 파괴되고 왜경 두 명이 폭살 당하는 쾌거를 이뤄 여류투사로서의 이름을 만방에 드날렸다. 당시 일제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여성의 몸으로 거사를 위한 폭파용 폭탄을 비밀리에 반입한다는 것 자체가 세상을 놀라게 한 일이었으며 더욱 놀라운 일은 거사 시에 안경신은 홑몸이 아닌 임신 상태였다. 거사 후 피신하여 있던 중 8개월 만인 1921년 3월 왜경에 체포 될 때에는 해산한지 얼마 안 된 상태로 핏덩이 아기와 함께 투옥되었다.

안경신의 사형 소식이 상해 임시 정부에 전해지자 김구와 장덕진 등이 탄원서와 석방 건의문을 보내 10년 형으로 감해졌는데 법정에서 안경신은 “조선 사람이 조선독립운동을 하여 잘 살겠다고 하는 것이 무슨 죄냐”는 벽력같은 소리로 재판장을 꾸짖고 당장 석방하라는 불호령을 내려 간수가 가까스로 형무소로 송환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감옥에서도 굴하지 않는 자세는 후세 사람들의 본보기로 남아있다.

안타깝게도 출옥 후 안경신에 대한 행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핏덩어리를 안고 형무소로 잡혀갔던 안경신의 출옥 후의 생활은 물론 사망 연도조차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정부는 1962년 3· 1절에 안경신에게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했다.


▲ 임신한 몸으로 평남도청에 폭탄을 힘차게 던지는 안경신 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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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7월 국내에는 ‘적의 관공리 된 자여 곧 퇴직하라.’라는 경고문이 나돌았는데 안경신도 이 경고문을 읽고 힘을 얻었을 것이다.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적의 관공리자 된 자여 곧 퇴직하라”

대한인아, 의를 아는 대한인아, 적의 관리가 되지 마라. 대한인아, 네가 대한인으로서 적의 주구(走狗)가 되었거든 오늘에 분연히 그 더러움에서 떠날지어다.

1. 대한의 정신
네가 대한의 피를 받았으니 응당 대한의 정신을 가졌으리라. 네가 진실로 대한의 정신을 가졌을진대 어찌 차마 조국과 동족을 적에게 파느뇨?

2. 의기와 용기
네가 대한의 피를 받았으니 응당 의기와 용기가 있으리라. 네가 실로 의기롭고 용감한 자일진대 어찌 구구히 사욕을 위해 대의를 멸하랴!

3. 조상의 의혈
불로 지져 죽음에 이르되 적의 신하가 되지 아니한 너의 조상, 사직이 망함에 순국한 너의 조상이 너를 부른다. 네가 실로 이러한 대한의 피를 받았을진대 응당 육신을 죽이고라도 정신을 살리라.

4. 동포가 부른다
3백 년 전에 10년 전에 조국을 위하여 무참히 왜적에게 짓밟힌 무수한 혼이 너를 부른다. 독립운동에 죽고 상한 너의 동족이 지금 옥중에서 갖은 고초를 당하며 죽어 가는 누이가 아우가 너를 부른다. 네가 대한 사람이니 응당 자나 깨나 귀에 그 소리를 못 잊으리라.

5. 독립의 값
네가 노예에서 벗어나려느뇨. 독립국민이 되려느뇨. 그러하건대 오늘로 결연히 퇴직하라. 자유와 독립이 너에게 값을 요구한다.

“독립신문” 1921년 1월 10일 <중략>
-숙명여대 한국학연구소 발간. ‘한국학 연구 제2집. 1992. 12’  235-268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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