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최우성
향로 연기 자욱한 속에 범음이 울리는데 爐火煙中演梵音
깊숙한 방이 고요하니 상서로운 흰 기운 나누나 寂寥生白室沈沈
문밖 뻗은 길엔 남으로 북으로 가는 사람 路長門外人南北
바윗가 늙은 솔엔 예나 이제나 달이로세 松老巖邊月古今
빈 절 새벽바람에 풍경소리 울리고 空院曉風饒釋舌
작은 뜰 가을 이슬에 파초가 이울었네 小庭秋露敗蕉心
내가 와서 고승과 한 자리에서 我來寄傲高僧榻
하룻밤 맑은 담론 값이 만금이로세 一夜淸談直萬金

위는 《동문선(東文選)》에 나오는 혜문(惠文) 스님의 시입니다. 고요한 산사에서 풍경소리를 들어가며 맑고 투명한 마음으로 수행하는 스님처럼 살아갈 수는 없지만 새해를 맞아 고요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풍경은 바쁜 이 시대 사람들이 마음속에 일렁이는 온갖 잡념과 상념을 가라앉히는 소리로 그리워해도 좋을 소리입니다.
풍경은 절의 전각 처마 끝에 달린 조그만 종인데, 가운데에 추를 달고 밑에 물고기 모양의 쇳조각을 매단 쇠종을 말합니다. 북한말로는 ‘바람종’인 이 풍경은 사람이 두드려서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힘 즉, 바람으로 소리가 나기 때문에 풍경이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풍경 끝에 물고기를 단 까닭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풍경소리를 듣고 자신들의 업을 씻어 다시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뜻과 또 한편으로는 늘 눈을 뜨고 사는 물고기처럼 수행자의 끈을 놓지 않으라는 뜻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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