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애국단에 입단한 후 선서문을 가슴에 달고 태극기 앞에 선 이봉창 의사.(출처=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는 8일 오전 11시 백범기념관에서 유관기관 대표와 독립운동관련 단체, 광복회원,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봉창 의사 의거 8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이날 기념식은 이봉창 의사 의거를 그린 연극 '나는 희망을 던진다' 공연에 이어 약사보고와 기념사업회장 식사에 이어 서울지방보훈청장·광복회장의 기념사, 학생대표의 청소년 결의문 낭독, 헌화분향 등 순으로 진행됐다.

이봉창 의사는 1901년 8월10일 서울에서 출생해 1931년 1월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독립운동의 중심지인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임시정부를 찾아간 이봉창 의사는 한인애국단의 김구 단장을 만나 일본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일왕 폭살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거사를 준비했다.

이 의사는 1년여의 준비를 거친 뒤 1931년 12월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12월말 도쿄에 도착했다.

일왕 히로히토가 1932년 1월8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봉창 의사는 이날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상하이의 김구 단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이 의사는 그날 도쿄 경시청 앞에 일왕 행렬이 나타나자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폭탄은 일본 궁내대신이 탄 마차 옆에서 폭발해 일장기 기수와 근위병이 탄 말 두 필을 쓰러뜨리지만, 일왕 폭살에는 실패했다.

현장에서 바로 체포된 이봉창 의사는 1932년 9월30일 도쿄 대심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열흘 뒤인 10월10일 오전 9시2분 이치가야형무소에서 순국했다.

그는 비록 일왕 폭살에는 실패했지만, 이봉창 의사의 소식을 전해들은 윤봉길 의사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해 상하이 폭탄의거를 결심하는 등 1930년대 한국독립운동사를 장식하는 의열투쟁의 선봉으로 평가받고 있다.

1946년 김구선생에 의해 일본에 있던 이봉창의 유해는 국내로 봉환돼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됐다. 정부에서는 이봉창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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